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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
삼호대숲은 태화강 옛 삼호교 남구쪽 다목적 광장 아래의 대숲을 일컫는 말이다. 이모(二毛)는 두 개의 털인데 여기서 이(二)는 둘, 모(毛)는 짐승의 털이나 새의 깃을 말한다. 그러나 굳이 이모라 표현하는 것은 검은 머리칼(黑髮)과 흰 머리칼(白髮), 검은 깃(黑羽)과 흰 깃(白羽) 등을 구분짓는것이 아니라 흑백이 함께 섞여있는 그레이(gray)상태를 이르는 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삼호대숲에는 자연 생태계의 이모가 있다. 검은 깃의 떼까마귀와 흰 깃의 백로이다. 떼까마귀는 겨울철새이며, 백로는 여름철새에 속한다. 북쪽 지방에 사는 새는 태양열을 최대한 많이 흡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은 깃으로 진화했다.
반면 더운 지방에 사는 새는 태양열을 보다 적게 받기위해 흰 깃으로 진화했다. 여름철새와 겨울철새가 사계절의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너무 춥고, 너무 더워서이다. 울산은 그들의 월동지이며, 피서지인 셈이다. 세상에는 대비할 수 있는 대상은 많다. 흰 것과 검은 것에 한정해도 먹과 백지, 밤과 낮, 흑인과 백인, 흑발과 백발 등 여러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까마귀와 백로의 대표적인 대비의 중심에 있다. 이직(1362-1431)이 지은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와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등의 쓰임이 대표적 대비의 사례이다. 그런데 사례와 다르게 삼호대숲에는 까마귀와 백로가 마치 부부같이 한 이불 덮고 잠잔다. 동숙한지도 이미 오랜 시간을 보냈다. 떼까마귀와 백로가 함께할수있는것은 아무래도 안온한 대숲의 잠자리 인듯하다. 녹색의 대나무 숲을 포근한 이불삼아 흑백이 함께하는 잠자리는 흔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청정한 태화강이 흐르고 있다. 풍수로 보면 배산임수에 잠자리가 있는 셈이다. 한편 떼까마귀와 백로의 동침의 현상을 관찰하다보면 여름철새인 백로가 반드시 떠나야한다는 고정된 관견(管見)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경험도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 관찰은 울산에서만이 할 수 있는 값진 현장체험학습이다.
인생의 이모는 어떠할까 살짝 엿본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기 전에 거치는 중년 반백이 이모이며, 그레이(gray)이다. 멋으로 보면 이모는 자연스럽다. 서양에서는 반 백발 중년의 중후한 사랑을 의미하는 말로 ‘그레이 로맨스’ 혹은 ‘로맨스그레이’로 부르고 있다. 우리의 삶주위에서도 자연의 섭리에 따른 떳떳한 이모를 볼 수 있다. 이모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염색한 검은 머리보다 아름답다. 특히 중년여성의 희끗희끗한 자연스러움의 이모는 우연히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도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한다.
사람의 나이 32세도 흰 머리털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으로 ‘이모지년(二毛之年)’이라 한다. 누구나 뒤돌아보면, 배냇머리 벗은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머리카락은 아스팔트에 그어진 흰 선같이, 너울에 순응하는 잘피같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새치’다를 반복하며 위로했는데, 이제 ‘새치’라고 우기기도 한계가 온 것 같다. 수염도 이모인 것을 보고 자연의 섭리를 끝까지 거부하지는 못하겠다.
이모는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이모는 세월 앞에 점차 겸손해지는 나이이다. 32살도 이모지년이라 하거늘 그 이상 말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이모는 흑백(黑白), 친소(親疎)의 분리가 아니라 화합과 원융을 실천할 나이이다. 이모는 전문적인 것을 제거한 자신을 돌아봐야할 나이이다. 전문성을 뺀 사회성, 대인성, 인품성을 생각할 나이가 이모의 멋이다.
이모의 생각과 실천은 기둥에 묶인 개처럼 오랜 세월동안 기둥 주위만 빙빙 돌면서 보아온 관견(管見)의 편견을 내세우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야한다. 이모는 어느 하나를 뽑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함께하는 것을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모는 앎이 있으면 밝음과 같이 앎이 없으면 어두움과도 같다. 또한 검고 흰 두 마리 소가 한 멍에와 굴레에 묶여 있는 것과 같다. 금까마귀와 옥토끼가 번갈아 나타남과도 같다.
인간의 진정한 알찬 삶은 이모의 미적 삶에 있다. 학문에 통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발레전공자가 각설이로, 국악공연에 비보이가 등장하는 현실이다. 호랑이라도 잦은 걸음걸이는 사냥꾼의 화살을 면치 못하며, 자주 날아다니는 새는 그물의 화를 면치 못한다는 교훈과 같이 이시대의 많은 이모여 이제 다방면에서 자기 삶을 한번쯤 생각해볼 시간을 권하고 쉽다. 또 한 해가 천천히 저물어가고 있는 이때.
김 성 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울산매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