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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스스로 10리(里)를 넘은 십리대숲 태화강변 묵묵히 지켜온 대숲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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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스스로 10리(里)를 넘은 십리대숲 태화강변 묵묵히 지켜온 대숲

파랑새/송이갑 2010. 10. 14. 18:42

[경상시론]스스로 10리(里)를 넘은 십리대숲  
한계 넘어 존재가치 드높여야
태화강변 묵묵히 지켜온 대숲 
 
 2010년 10월 13일 (수) 22:22:00 이태철  egija@ksilbo.co.kr  
 
 
     
  
     
  
이제는 새로울 것도, 그리 놀라울 것도 없을지도 모르는 태화강변의 초록색 대숲. 울산 사람들은 그런 태화강변의 대숲을 흔한 일상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울산을 떠나 다른 도시의 평범한 강을 바라보노라면, 태화강변에 그림처럼 펼쳐진 대숲이 얼마나 독특하고 비범한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된다. 

 이토록 소중한 ‘태화강 십리대숲’은 울산이 내세우는 자랑거리이자, 생태·환경의 보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대숲의 생성 근원에 대한 연구와 고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울산문화원이 펴낸 <울산지명사(1986)>에는 이 십리대숲에 대하여 ‘내오산(內鰲山) 아래에 있는 대밭으로 일본인 오까다(岡田)가 대[竹]를 심었다’라고 기록돼 있고, 연세 지긋한 분들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심었다’는 말이 구전되고 있다. 위의 기록을 가감없이 받아들인다면, 대숲은 ‘대밭’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밭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경작지를 뜻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과는 대비된다. 여하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땅을 매수하여 강변에 대를 심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이전에 태화강변에는 대숲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을까?

 울산 최초의 읍지인 <학성지(鶴城誌, 1749년)>에는 태화강변의 대숲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내오산(內鰲山)은 태화진(太和津)의 서쪽 수리(里)쯤에 있다…(중략)…만회정(晩悔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중략)…정자 앞에는 가늘고 긴 대숲 몇 이랑[畝]이 있고, 정자 아래에는 낚시터가 있는데…’

 이와 같은 대숲은 내오산 주변뿐만 아니라 태화루터 주변 황룡연(黃龍淵) 일대와 태화강 하구에 솟은 삼산(三山, 일명 오산(鰲山))에도 있었다고 고문헌들은 말하고 있다. 즉 태화강의 십리대숲은 ‘밭’이 아닌 ‘숲’이며, 일본인이 대를 심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 태화강을 움켜쥐어 홍수로부터 들을 지켜 내었고, 바위를 감싸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건재를 과시하던 태화강변의 대숲도 한때는 흔적 없이 사라질뻔한 위기가 있었다. 1987년 12월, 태화강 둔치에 위치한 십리대숲을 모두 제거하는 조건으로 제방 축조 및 단면계획을 골자로 하는 태화강 하천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된 것이 그것인데, 대숲이 홍수 때 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래로부터 태화강물과 엎치락뒤치락 꿈틀거리는 용처럼 천연덕스럽게 인연을 맺어오며 강안을 지켜온 대숲이 그렇게 억지스러운 이유로 그예 황천길을 떠날 뻔한 것이다. 그러나 태화강보전회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각계 각층은 오히려 대숲이 대기오염정화와 생태계 보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냈고, 이를 계기로 대시민 캠페인, 시의회 청원, 언론홍보에 이은 7만명 시민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시민들의 뜻을 한데 모아 끝끝내 건설교통부로부터 대숲존치 결정을 얻어 내었다. 이는 울산시민의 태화강 사랑을 넘어 울산의 생명을 구한 크나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태화강의 십리대숲은 살아남아서 오늘도 부지불식간에 호시탐탐 강을 건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마치 완성된 듯하고, 마치 행보를 멈춘 듯하지만 지칠 줄 모르고 강의 상류로, 하류로 가려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머지않아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지만, 입암리(구영리 포함)의 대숲을 보면, 십리대숲에 비하여 턱없이 평가절하되고 있어 사뭇 안타깝다. 입암리 일원의 대숲은 선바위 및 입암정과 조화를 이룬 역사·문화가 숨 쉬는 곳이며, 기암절벽과 백룡담의 푸른 물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을 이루는 뛰어난 경승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동네처녀의 안타까운 전설이, 조선시대 묵객의 흥취가 담겨있는 이야기의 산실이다. 

 그래서 태화강 십리대숲과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발현하고 있는 듯하다. 즉 입암 주변의 대숲은 그들의 색깔대로 풀어야 그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2010년 십리대숲은 태화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시민들은 환경과 생태 그리고 역사·문화의식을 보다 높였다. 따라서 태화강의 대숲도 십리의 한계를 훌쩍 넘어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수식 울산과학대 교수 태화강보전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