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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태화루’ 부활의 의미 찾기

파랑새/송이갑 2009. 11. 30. 21:43

[경상시론]‘태화루’ 부활의 의미 찾기
문화예술창조로 명소 조성을
울산 역사 상징이자 자긍심
2009년 11월 24일 (화) 21:46:09 이태철
   
 
  ▲ 문영 시 인  
 
영남 지방의 3대 누각으로 이름을 떨쳤던 ‘태화루’가 2013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태화루는 임진왜란(1592~1598) 때 불탄 이후 약 410여 년이 지나서 부활되는 셈이다. 그동안의 논란과 우연곡절을 거쳐 다시 태어나는 태화루를 두고 이제는 왈가불가하지 말자. 그 이유는 태화루의 부활 그 자체가 울산 역사의 상징이며, 울산의 얼굴이기도 하고 또한 축복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를 사는 울산인들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400억 원이 드는 예산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울산의 경제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자. 태화루의 정확한 위치와 원형의 모습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중국의 3대 명루인 남창의 등왕각과 무한의 황학루, 악양의 악양루 또한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위치와 모습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하자.

등왕각은 당나라 때 세웠지만 스물여덟 번이나 수리 복원되었고, 여섯 번이나 장소를 옮겼다. 현재 건축 양식은 송나라 때로 내부는 현대화되어 승강기까지 있다. 황학루는 삼국시대 오나라 때 손권이 지었지만 현재는 청나라 건축양식이며 악양루는 삼국시대 오나라 노숙이 처음 지었지만 17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의 보수와 복원을 거쳐 현재는 청말의 건축 양식으로 그 웅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태화강과 십리대숲, 남산의 봉우리 마다 위치하고 있는 은월루와 군월정, 삼호정 등의 자연 경관과 아파트촌이 함께 공존하는 곳. 그들과 짝하여 용금소 절벽 바위 위에 자리할 태화루의 장관을 상상해 보라. 그 자체가 시요, 글이요, 탄성이리라.

태화루 부활의 의미는 ‘아! 우리 시대에 새로운 태화루를 세웠구나’라는 감격조의 어사(語辭)가 앞 설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이보다는 태화루의 부활 그 자체가 역사이며 현재 울산의 삶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의 사건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그럼으로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태화루 부활을 두고 딴지를 걸지 말자. 문제는 태화루가 울산의 역사와 울산인들에게 온전히 기억될, 빛날 요인을 발견하고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즉 태화루 부활의 의미를 찾아내어야 한다는 말이다.

먼저 생각할 것은 태화루를 노래한 시문이다. 김극기의 ‘태화루시서’로부터 정포, 이곡 등의 ‘태화루’에 관한 많은 시와 권근의 기문, 서거정의 ‘중신기(重新記)’ 등의 글을 통해 태화루가 다시 부활하였다는 사실이다. 원형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태화루에 관한 시문이 중요하며 이러한 작품이 있었기에 태화루가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중국의 3대 명루도 시인 문객들의 글 때문에 천하에 그 명성을 날리게 되었던 것이다. 등왕각은 중국 4대 명문이라 하는 왕발의 ‘등왕각시서문’이, 황학루는 200명이 넘는 문인들이 약 340편의 시를 지어 그 풍광을 찬양했기에 유명해진 것이다. 이 중 최호의 ‘등황학루’란 시는 최고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정호에 있는 악양루는 누각보다는 두보의 ‘등악양루’라는 시와 범중언의 ‘악양루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 지금도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중 두보의 시와 범중언의 ‘악양루기’의 한 구절인 ‘천하의 근심을 누구보다 앞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누구보다 나중에 즐거워한다’는 명구로 식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같은 누정의 시문은 누각과 정자의 의미를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문화예술의 가치를 문화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경제적 효과도 아울러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태화루의 부활은 울산 역사의 부활이며 울산 문화예술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태화루의 부활이 역사, 문화, 교육, 관광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명소(名所)로 탄생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은 시문을 비롯한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가 필요한 때이다.

문영 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