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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도시와 자맥질하는 반구대

파랑새/송이갑 2009. 4. 6. 16:03

고래도시와 자맥질하는 반구대
[기사일 : 년 월 일]  
김진영 편집부국장  

 


 반구대암각화가 붕괴직전이라는 보도를 보고 전국 여러 곳에서 우려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한결같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한탄과 걱정의 목소리였다. 울산은 한반도 유일의 고래도시다. 귀신고래가 회유하는 해면이 울산 앞바다이고 선사시대부터 고래와 동고동락을 해온 증거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지역이다. 이 때문에 울산 남구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고래축제를 열고 정부에서도 이 지역을 고래특구로 명명했다.

 문제는 고래특구로 지정되고 고래축제를 여는 일이 아니라 고래와 관련한 역사와 정체성에 있다. 다행히 지난 1971년 반구대 암벽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울산이 선사시대부터 고래의 본고장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발견 당시 암각화는 이미 울산공업단지의 용수난 해결을 위해 건설된 사연댐 수역 내에 있어 일 년 가운데 7~8개월은 수몰된 상태였다. 사연댐이 건설된 1965년부터 40여년을 수몰과 돌출을 반복해온 반구대 암각화는 퇴적암이라는 암석의 특성 때문에 엄청난 표면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벚꽃구경으로 주말내내 교통체증이 계속된 언양 시가지를 조금 벗어나면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자리하고 있다. 반구대는 암각화가 아니더라도 굽이치는 계곡과 높게 솟구친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기막힌 절경을 품고 있다. 마치 물에 잠긴 모습이 거북이 형상이라 하여 반구대라 부른 이곳은 조선의 풍류객들이 음주가무를 즐긴 곳이다. 암각화가 있는 벼랑 가는 길옆에는 집청정이라는 정자와 반구서원이 있다. 반구서원은 원래 건너편 포은대 밑에 있었는데 사연댐으로 인한 수몰지구라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 것으로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를 모신 서원이다.

 필자는 지난 1995년 반구대암각화가 국보로 지정된 직후 이곳을 처음 찾았다. 당시 반구대암각화에는 서울 모대학과 부산 모대학의 사학과 학생들이 암각화 표면을 탁본하기 위해 사다리를 세운 채 작업을 하고 있던 기억이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발견 당시부터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다. 무리를 지어가는 사슴, 하늘로 힘차게 솟구치는 표범, 멧돼지, 개 등 초식동물에서부터 사나운 맹수까지 새겨진 암각화 만으로도 놀라운 발견이지만 수많은 고래의 형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 반구대암각화는 무엇보다 고래가 주인공이다. 작살 맞은 고래부터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이 영락없는 고래천국을 연상케 한다. 반구대암각화를 통해 유추해 보면 선사시대 울산은 그야말로 고래부락이었다. 반구대 인근의 넓은 평지는 고래잡이 배들이 정박한 고래항구였고 그 상부 평원과 산지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자산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부족이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이들은 참고래부터 귀신고래까지 단체수렵을 통해 사냥을 해 뼈는 화살촉과 사냥기구의 재료로 사용하고 기름은 불로, 고기는 양식으로 활용했다. 

 바로 이 같은 이 땅의 흔적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 퇴적암의 특성상 반구대암각화는 물과 상극이다. 퇴적암이 물을 만나면 자연상태의 퇴적암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훼손이 급격하게 진행된다. 현재 상태가 풍화퇴적 4.5단계라니 거의 흙으로 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지금 국보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느긋하기만 하다. 공청회니 토론회니 하며 허송세월을 한 것이 10년째이고 본격적인 보존대책으로 말장난만 늘어놓은 게 3년이나 된다.   

 선사유적의 훼손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중국이나 몽골, 러시아 등에도 상당한 수의 암각화 유적들이 있지만 국가의 관리부재와 문화재 의식 부재에다 지역 주민들의 훼손행위까지 겹쳐 사라져 가고 있다. 반구대암각화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포르투칼의 포즈코아 암각화는 댐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지만 시민들과 전세계의 학자들의 거센 반대운동으로 되살아난 사례다. 포르투칼 정부는 유적이 있는 코아 계곡을 고고학 공원으로 조성하고 당초 건설할 댐을 하류로 이전했다. 지금 이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관광자원으로 거듭나 있다.

 다음 달이면 울산에서 다시 고래축제가 열린다. 많은 문학인들이 고래유람선을 타고 동해바다로 나가 고래문학을 이야기하고 고래박물관을 중심으로 고래잡이 재현행사와 고래음식문화 시식회 등이 펼쳐진다. 올해부터 동해바다로 '고래관광선'이 해양투어도 나선다. 물론 반구대암각화 앞에서 지내는 고사를 시작으로 고래축제의 막이 열린다. 하지만 자맥질을 반복하는 반구대암각화를 방치한 채 고래축제의 내실화를 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낯 뜨거운 일이다. 푸석푸석 떨어지는 암각화 조각이 흙이 되 버리면 '고래도시' 울산은 그야말로 세게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