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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송이갑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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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반딧불이 여름밤 수놓던 청정마을

파랑새/송이갑 2009. 1. 20. 08:53

[나의 살던 고향은]반딧불이 여름밤 수놓던 청정마을
(17) 두서 내와마을(상)
김유신 전설 서린 백운산 자락 산골 오지마을
맑은 산중서 자라는 산나물 약초나 다름 없어
초가집들 간데 없고 지금은 사방으로 도로
2009년 01월 18일 (일) 김창식 goodgo@ksilbo.co.kr
   
 
  ▲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외와마을 풍경.  
 
내가 태어난 고향은 울주군 서북부에 위치한 두서면 내와리이다. 산골 오지(奧地)인 내 고향 내와(內瓦)를 아는 사람은 참 드물다. 울산 태화강의 새로운 발원지(發源地)로 알려진 탑골샘을 품고 있는 백운산(白雲山) 북편 분지(盆地)에 펼쳐진 산골 마을로, 폐교된 옛 초등학교가 울산숲자연학교로 바뀐 뒤 학생들과 시민들이 숲체험을 통해 환경지킴이가 되려고 찾아오는 마을이기도 하다.

최근 쇠고기 특구로 잘 알려진 두동면 봉계에서 물길과 산길을 따라 꼬불꼬불 8km 정도 해지는 방향으로 들어가면 백운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속에 내와, 외와, 중점, 숲마을, 탑골이라 불리는 다섯 개의 마을이 논과 밭, 숲과 개울을 따라 올망졸망 자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들 마을을 통틀어 내와라고 부른다. 이 중 100여년전 천주교 신자들이 백운산 깊숙이 들어와 천주교 공소(성당)를 짓고 살았던 탑골 마을에는 지금 사람이 살지 않고 있다.

나는 외와(外瓦)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는 기와 와(瓦)자가 들어간 마을 이름과는 달리 기와집은 몇 채 밖에 없었고, 거저 좁은 돌담길을 따라서 작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좀 큰 건물이라고는 초등학교와 뾰족탑이 있는 교회 건물이 전부였다.

그러나 요즘 고향에 가보면 그 많던 초가집들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 기와집이나 양옥(洋屋)으로 바뀌어 있다. 더구나 외지인들이 들어와 풍광 좋은 곳에 별장 같은 좋은 집들을 군데군데 지어서 살고 있고 또 마을 뒤편에는 큰 시설물을 갖춘 요양시설도 두 곳이나 들어와 있다. 게다가 소달구지 겨우 지나가던 좁은 길 뿐이었던 마을에 요즘에는 봉계와 경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이 마을을 휘돌아 훤하게 나있어 마을의 모습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 마을은 본래 산촌 오지이다 보니 자연히 울산 최고의 청정(淸淨)마을이었다. 마을 앞 가운데 위치한 내와초등학교 앞으로는 형산강(兄山江)의 발원지가 되는 백운산 삼강봉의 두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물이 합수(合水)되어 곳곳에 소(沼)를 이루고 있었다. 그 맑은 물속에는 각종 민물고기와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반딧불이의 먹이가 되는 다슬기가 많다보니 여름밤이면 반딧불이의 군무(群舞)를 만끽할 수 있었는데, 최근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이후로는 도시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 각종 민물고기뿐만 아니라 다슬기를 무차별로 잡아가는 바람에 반딧불이가 거의 멸종된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생명의 끈이 쉬이 끊어지지 않고 개울가 곳곳 바위틈에 여지껏 살아남은 다슬기 덕분에 아직도 여름밤이면 간간히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고 하니 더 늦기 전에 행정당국에서 이 청정마을의 자연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특별한 조치를 취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마을의 특산물로는 공해 한 점 없는 깨끗한 산중에서 자라나는 약초나 다름없는 산나물이다. 주로 채집되는 산나물은 참나물, 미역취, 비비추, 뚜가리나물, 느릅밥나물, 부지깽이나물, 곤데서리나물과 제삿상에 필수품인 고사리와 고비나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동네 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물을 캐러 산으로 갔다가 저녁 무렵이면 저마다 산나물을 한 보따리씩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들 산나물을 생으로 먹을 것과 금방 데쳐서 먹을 것을 먼저 가려내고, 나머지 것들은 솥에다 쪄서 잘 말린 후 묵나물로 만들어 1년 내내 집에서 먹거나 아니면 장(場)에 내다 팔았다. 우리 동네의 묵나물은 ‘내와 나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경주나 언양장에서 날개 돋친 듯이 금방 팔렸다고 한다.

산나물 중에서 특히 참나물은 생으로만 먹을 수 있는 나물인데 그 맛이 미나리보다 훨씬 뛰어난 별미인데다 피를 맑게 해주는 약초여서 나물 캐는 사람들이 참나물 나는 자리만은 절대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한다. 봄날 해질녘에 가끔 전화가 와서 고향에 들르면 팔십 노모가 정정치 못한 몸으로 산에서 갓 뜯어온 참나물을 먹으라고 내놓으신다. 맛있게 먹는 도중에 콧등이 시큰해지는데 생각해보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은 끝 간 데가 없다.

우리 내와 마을의 명물은 단연 백운산(白雲山)이다. 백운산은 높이가 거의 1000m에 이르는 산인데 영남지역 두 산업도시의 젖줄이 되는 울산 태화강과 포항 형산강의 발원지가 되는 특이한 산이다. 백운산의 삼강봉(三江峰)은 봉계와 경주를 거쳐 포항 영일만으로 들어가는 형산강(兄山江)의 발원지로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백운산 탑골샘이 태화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태화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가지산 쌀바위는 상징적 발원지로 바뀌었다.

탑골샘에서 시작되는 태화강의 물길은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감돌아 총 57.5km를 달려 울산만에 이르는 역사를 품고 민족의 번영을 약속하는 물줄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백운산은 우리 마을의 자랑스런 랜드마크이다.

백운산은 또한 신라시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의 전설이 서려있는 산이기도 하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 장군이 감투봉 바로 밑 동굴에 들어와 삼국통일을 위해 보검을 들고 기도하니 천관신(天官神)이 보검에 신령스런 기운을 주었으며, 두 별 허숙(虛宿)과 각숙(角宿)에서 뻗어 나온 광채가 보검에 비치자 보검이 징하고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운산은 우리 마을에서 바라보았을 때 정상(頂上)의 두 봉우리 감투봉과 삼강봉이 장엄한 모습으로 뚜렷이 보인다. 이 백운산의 영령한 서기(瑞氣)를 받아 우리 고향은 앞으로도 더욱 살기 좋은 마을이 되리라 믿는다.

김익근 범서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