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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실된 오산의 천학도 관어대와 함께 복원을" ...

파랑새/송이갑 2008. 10. 11. 17:46

[울산, 이야기 속으로]"멸실된 오산의 천학도 관어대와 함께 복원을"
(26) 울산의 학 이야기는 천학(天鶴)이다

그림=나원찬

도교 색채 강한 선학과 다른 유교적 주신체로 신성시
울산박씨 세보 '금신상 물고 신학성 내려와 지명 개칭'
1996년 수로공사때 사라진 천학암각도 탁본으로 남아




학은 흰빛의 몸매와 긴 목, 이마에 붉은 점을 가졌다 하여 '단학(丹鶴)'이라 하기도 하고,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천천히 걷는 우아한 자태에다 '뚜루루'하는 소리로 운다하여 '두루미'라 이름붙여지기도 했다. 또 신선을 태우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순백(純白)의 새로 동경(憧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천년 학(鶴), 만년 구(龜)라 하여 애기들의 돌잔치나 어른들의 환갑잔치 때의 청첩장에는 반드시 대나무와 거북이, 학의 그림이 원용됐다. 그만큼 신성한 동물로서 숭배돼 왔다.

그러므로 학은 감히 인간이 접할 수 없는 새, 다시 말해 천신(天神)과 신선(神仙)만이 근접할 수 있는 영물(靈物)로 많은 이야기와 그림에 전해오고 있다.



중국의 황학루(黃鶴樓) 고사(故事)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황학루는 기암절벽의 고산에 있는 누각(樓閣)인데, 구름 속에 우뚝 솟은 마치 그림같은 선경으로 중국의 강남(江南) 삼대누각(황학루, 악양루, 등왕각)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명루(名樓)이다.

시인 최호(崔顥), 이백(李白), 맹호연(孟浩然) 등의 묵객들이 자주 이 누에 올라 탄영(歎詠)하고 조망(眺望)하다가 누하의 주막에서 목을 축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하루는 옷은 비록 남루했지만 풍기는 인품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과객이 있었다. 남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것만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본 주모는 딱하게 생각하여 한 바가지의 술을 대접하였다. 주모는 그렇게 달포가 되도록 말 한 마디 없이 매일처럼 술대접을 계속했다.

주모는 속으로 괘씸한 생각도 들어 하루는 "손님 술값을 계산해야지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하자 곁에 흩어져 있는 귤껍질을 쥐고서 벽에 한 마리의 멋진 학을 그려놓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손님들이 흥겨워 노래를 부르면 벽에 있는 학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었다. 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주모는 손님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자가 되었다. 주모는 그 손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매일 기다렸다.

근 석달만에 그 손님이 나타났다. 주모는 정성껏 술상을 차려 그 은공을 금화로 갚고자 했으나 그는 듣지도 않고 여전히 술잔을 단숨에 마시고는, 벽에 있는 학을 불러 타고는 하늘 높이 날아 가버렸다."

이로 보면 학을 타고 떠난 분이 신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울산에 전해오는 학이야기는 천학(天鶴)이다. 선학(仙鶴)이나 천학(天鶴)은 서로 다를 바 없는 신령체(神靈體)이다. 다만 신선은 도교적 주신체(主神體)이고, 천학은 유교적 주신체(主神體)인 것이다.

울산에 전하는 이야기에 어느 날 천학이 금신상(金身像)을 물고 신두산(神頭山)에 내렸다가 다시 학을 타고 신학성(神鶴城)에 내렸다. 그 때의 울산은 계변성(戒邊城)이라 호칭했는데 그 일이 있고부터 울산을 신학성(神鶴城)이라 개칭하였다. 울산박씨 세보(世譜)는 그 시가를 당나라 천복(天復)1년(901년·신라 제52대 효공왕 5년)으로 전하고 있다.

그 물증으로, 멍정(抹應亭)의 뒷산이 태화강으로 이어진 오산(鰲山)의 관어대(觀魚臺)에는 암벽(岩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천학도(天鶴圖), 황룡도(黃龍圖), 만구도(萬龜圖)가 있었다. 1996년 수로공사 때 멸실되고 지금은 구각도(龜刻圖)만이 남아 있다. 그 천학도 밑에 '天鶴'이라는 각자(刻字)도 있었다. 다행히 그 세 암각도(岩刻圖)를 울산학춤의 선도자인 백성(白性)스님께서 탁본으로 보관하고 있다. 실로 백성스님의 선견적인 학춤연구는 우연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태화동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로가 확장돼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멍정의 뒷산자락이 오산(鰲山)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끝이 곧 관어대의 절경이었다. 지금도 거기에는 묘소가 있어 산자락임을 느끼게 한다.

하기야 지금은 십리대밭 시설물 때문에 관어대마저 나무다리에 묻혀 학 이야기의 상징적 증시물(證示物)이었던 천학도와 황룡도는 볼 수가 없고 구각도(龜刻圖)와 관어대의 각자(刻字)만 볼 수 있다. 다행히 그와 비슷한 천학도는 반구대의 학소대(鶴巢臺) 벼랑에 한 쌍이 있다.

이 귀중한 학(鶴), 용(龍), 구(龜)의 암각화를 관어대와 함께 복원하여 태화루와 그 아래 황룡연 이야기로 연결시키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황룡연(일명 황금소)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날 태화루에서 놀던 유생이 은잔(銀盞)을 황금소에 빠뜨렸다. 어부에게 건져오게 하였는데 사흘이 되어도 올라오지 않았다. 모두 죽은 줄만 알았다. 사흘 뒤에 돌아온 어부가 이르기를 물속의 용굴(龍窟)이 황금 같아서 그곳을 걸어 드니 백양사(白楊寺)로 통하더라"

지금이라도 관어대와 태화루, 황룡연, 장춘오(藏春塢) 등을 잘만 되살린다면 보다 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수봉 교수

 

경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