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
| 5 | 6 | 7 | 8 | 9 | 10 | 11 |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 26 | 27 | 28 | 29 | 30 | 31 |
Tags
- 태화강기마
- 은진송씨울산종친회
- 처용의바다
- 남울산연금이봉사단
- 온포/진달래
- 건강
- 동신/하늘소
- 좋은글
- 재테크
- 노래
- 우공/이문조
- 국토해양부
- 현대중공업
- 요즘
- 사회적기업
- 명정천
- 재개발
- 울산강살리기네트워크
- 요리
- 울산발전연구원
- 풍경
- 태화강보전회
- 상식
- 태화강
- 울산환경운동연합
- 부동산
- 유모
- 울산사회조사연구소
Archives
- Today
- Total
파랑새/송이갑 블로그
엄창섭 군수 斷想 본문
| 엄창섭 군수 斷想 | |
| [기사일 : 년 월 일] | |
| 이지근 편집국장 | |
![]() 민선2기에 이어 3기까지 두 번에 걸쳐 울주군수로 당선됐던 엄창섭 울주군수가 25일 결국 중도 낙마했다. 대법원이 열거한 그의 위법사항은 차치하고 엄 군수가 과연 이 시대의 민선단체장으로 적임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엄 군수는 평생 "머리가 좋다"거나 "박식하다"는 말을 지겹게 들으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산과 서울 유학길에 나섰던 것부터가 시골무지렁이의 삶과는 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촌놈'이라는 딱지를 뗄 수가 없었다. 학적부는 물론이고 이력서, 경력조회에 이르기까지 고향은 언제나 이곳 울산이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조회시간에 느닷없이 "산골촌놈 나와!"라고 호명했다. 촌놈이면 촌놈이지 '산골'까지 붙는 촌놈이 누군지를 몰라, 급우들이 서로 힐끔거렸다. 엄 군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대뜸 "엄창섭! 바로 너지, 누구기는 누구야!"라고 호통을 치더란다.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가 당시에는 울산(山)군 온산(山)읍 화산(山)리로 산(山)이 세 개나 중첩되었으니, 촌놈 중에서도 상(上)촌놈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엄 군수는 이때부터 스스로를 촌놈이라 호칭했고, 자신이 촌놈의 태를 벗는 것과 함께 고향이 더 이상 푸대접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비록 대한민국의 심장부라 할 수도 서울에 진출, 머리 좋은 아이들과 경쟁을 하면서도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는 자아의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서울 아이들과는 뭔가 다른 특출한 것이 없고는 촌놈으로서 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서울대 법대와 법대대학원을 간 것도 성장환경과 무관치 않았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하는데 있어 당시로서는 '사법고시 합격'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위한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데모'의 주동자로 몰려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공민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한창 꿈을 키울 나이에 산사(山寺)를 전전하며 울분을 삭였다. 그러다 대통령 특별사면 조치로 공민권이 회복되었고, 곧장 수출전선의 최선봉에 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했다. 판검사의 꿈을 접은 것에 대해 그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유복자였던 엄 군수는 맹모삼천을 능가하는 조모의 지극 정성과 어머니의 헌신으로 또래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판검사가 된다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다. 때문에 어른들의 기대와 자신의 꿈을 공사입사로 대신한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외국어공부는 물론이고 현장경험에도 늘 모범적이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동기생들보다 승진이 빨랐고 유렵과 미주 등에서 통상본부장과 무역관장 등을 역임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스스로도 대견해했다. 영어와 불어, 독어는 수출상담 등에서 전혀 지장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은 코트라 뿐 아니라 울산시 공무원사회에서도 전설이 되어 회자되고 있다. 상공부장관 비서로 일했던 얼마 동안을 제하고 그는 줄곧 코트라에서 젊음을 보냈다. 당시의 수출이라는 것이 민간이 아닌 정부주도로 했고 그 첨병을 코트라가 맡았다. 엄 군수가 민선자치시대의 울산광역시외자통상본부장으로 영입된 것 역시 바로 이 같은 점이 높이 평가되어서다. 현재 울산배와 호계 호접란이 유럽이나 미국시장에 수출될 수 있게 한 시장개척자가 바로 그다. 울산이 한일월드컵의 주최도시로 국내 어느 지역보다 많은 외국선수단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발 빠른 판단과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참모로서의 엄 군수는 어디에 가더라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역시 참모로서의 업무한계를 절감했고 보다 큰 비전을, 자신의 구상대로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변신이 필요했다. 울주군수선거는 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자리였다. 영어교육 활성화를 위한 영어마을 추진과 울주군청사 이전, 울주7봉 관광개발사업 등에 특히 많은 애정을 보였다. 주변에서 반대와 만류가 있었지만 그는 임기 중에 반드시 이를 관철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사업은 선장 부재로 표류하고 있다. 더욱이 25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이 일은 후임자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어쨌든 엄 군수는 참모에서 지휘관으로, 그것도 복합행정을 해야 하는 자치단체장으로의 변신에는 실패했다. 손색없는 경륜과 능력을 갖췄으면서도 자치단체장으로서의 업무 수행에는 누구보다 많은 뒷말을 남기고 결국 중도하차하게 된 배경을 두고는 앞으로 상당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울산발전과 울주군을 위해 그가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참모와 지휘관의 경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물론 그 역시 인간이기에 결점도 많았고, 울산발전을 위해 그가 추진했던 사업들이 꼭 정답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또 그의 지나친 의욕이 화를 불렀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14억 중국인이 공자에게서 다시 길을 묻고 있듯이 그의 지혜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때문에 너무 매몰차고 단정적인 평가를 삼가야 할 것으로 본다. | ||
'▒사회연구소및컨설팅▒ > 울산소식(n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린웨이 사업' 전시행정 안 되길... (0) | 2008.09.30 |
|---|---|
| 감사로 다시 고개숙인 기초의회 해외연수 (0) | 2008.09.27 |
| 급증하는 차량…주차 특단대책을" (0) | 2008.09.26 |
| 박맹우 시장, 경영혁신부문 '대상' (0) | 2008.09.20 |
| 산업수도로서의 품격을 갖추자 (0) | 2008.09.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