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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송이갑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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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태화강 단상

파랑새/송이갑 2008. 9. 13. 06:53

[특별기고] 태화강 단상
[기사일 : 년 월 일]  
이상탁 연세대 교수·공학박사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온 지 어언 사십 년 세월이 흘렀다. 나의 고향은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다.
 문수산과 국수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널따란 들판 앞으로 태화강이 흘러가는 정말 멋진 곳이다. 지금은 울산 시민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신주택지로 개발되어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범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비만 오면 태화강이 범람하여 결석하는 날이 많았다. 변변한 다리 하나 놓여 있지 않고 돌로 만들어진 돌다리를 건너가다 겨울에는 미끄러져 물에 빠지곤 했다.

 지금도 나의 가슴 속에는 맑디맑은 수정 같은 태화강물이 어머님의 품 속 같은 느낌으로 흐르고 있다.
 지금의 울산을 대표하는 명소인 선바위도 나의 고향에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열 두 번이나 선바위로 소풍을 간 기억이 난다.
 금강산의 한 봉우리를 옮겨놓은 듯 숱한 전설을 간직한 선바위는 그 아름다운 그림자 백룡담에 비칠 때면 한 폭의 풍경화로 일품이다. 산 좋고 물 맑은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는데 정몽주, 이언적 같은 선인들도 이곳을 찾았다 한다.
 
 선바위 아래로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달뜨는 저녁이면 청춘 남녀의 약속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
 아름다운 태화강변에서 태어난 나는 태화강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많다. 태화강 상류 지역인 두서면 중리에 가면 580년이나 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천연 기념물 제 64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나의 19대 선조이신 이지대 조부께서 한성판윤을 지내시다 귀향하셔서 우물 옆에 심으신 나무로 우리 경주 이 씨 익제공파 집안의 큰 보물이기도 하다. 한때 은행나무에 큰 불이 나서 장정 12명이 앉을 수 있는 큰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 집안에서는 사방으로 뻗어있는 은행 나뭇가지에서 봄에 맨 먼저 새싹이 돋는 쪽에 자손들이 그 해에 번창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리가 막 필 무렵, 버들강아지가 파랗게 물이 오르면 바다에서 황어가 산란을 위해 태화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온다.

 황어는 회귀성 어류로 민물에서 산란하여 치어로 자란 후 바다에서 성장하여 다시 산란을 위해 자기가 태어난 태화강으로 돌아오는 어종이다. 강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리 지어 황어가 올라오면 사람들은 그물로 고기를 잡는다. 기술이 좋은 사람은 그물 한번 치면 몇 십 마리가 한꺼번에 걸려든다. 그러면 환호성이 터지고 태화강변은 축제의 한마당이 되곤 했다. 황어는 생선회, 매운탕으로 요리하고 아가미를 버들가지로 꿰어 파닥거리는 싱싱함과 함께, 보릿고개시절에 좋은 단백질을 제공해준 고마운 물고기였다고 기억된다.

 맑은 물에만 서식하는 다슬기도 지천이었다.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으로 저녁 해질 무렵, 보리쌀 삶는 시간이면 돌 밑에 숨어있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다슬기를 잡았고, 잠깐이면 바구니 가득 다슬기를 잡을 수 있었다. 다슬기에 묻어있는 이끼와 모래를 제거한 후 뜨거운 물에 삶아서 탱자 나뭇가지로 속살을 파낸 다음 부추와 들깨를 갈아 넣어 다슬기 국을 끓이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눈 건강과 숙취에 그만이라고 알려져 있다.

 태화강변에는 자연이 만들어준 다이빙 명소가 있다. 오랜 시절 비바람에 바위가 깎여 계단을 만들어 주니 수면과 가장 가까운 계단에서는 저학년이 다이빙을 하고 그 다음 조금 높은 계단에서는 고 학년이 다이빙을 즐겼다. 찌는 듯 한 무더운 여름, 방과 후와 방학 때는 온 동네 친구들이 다 모여 매미소리, 새소리와 함께 수영을 즐기던 자연 풀장이었다.

 밥그릇으로 고기를 잡는 이른바 사발고기, 사발에 된장을 풀어 비닐을 덮은 후, 고기가 들어갈 수 있게 조그만 구멍을 내고 물에 담가두면 고기가 된장 냄새를 맡고,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기회를 보면서 사발을 건져내면 고기가 한 사발 가득 들어가 있다. 너무 오래 두면 된장을 배부르게 먹은 고기가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러기 전에 건져내야 한다. 먹이 활동이 가장 활발한 오전 10시 무렵과 저녁 해질 무렵에 고기가 가장 잘 잡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발고기를 잡는데 스님이 다가오시더니 잡은 고기를 놓아주면 용돈을 주신다고 하여 풀어주고 용돈을 받은 기억도 있다. 알고 보니 그것이 불교용어로 방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봄이 되면 벼를 심기 위해 논에 가득 물을 채운다. 그때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위해 논으로 다 모여든다. 개구리 뒷다리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 뒷다리 껍질을 벗긴 후 소금을 뿌리고 철사 줄에 꿰어 장작불에 구워먹으면 어린 시절 건강식으로 최고였다.

 이 모두가 태화강변에 태어난 아련한 추억들이다. 그 맑고 깨끗하던 태화강이 한동안 고생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다시 울산 시민의 노력으로 울산의 젖줄이 되어 옛날의 그 모습으로 되돌아 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울산 시민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울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