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파랑새/송이갑 블로그

[다시 찾는 울산 문화유산]고려 충신 정몽주 구국충정 면면히 본문

▒[울산시태화강카페]▒/♣태화강·동천,회야강·샛강·강넷소식

[다시 찾는 울산 문화유산]고려 충신 정몽주 구국충정 면면히

파랑새/송이갑 2008. 3. 19. 10:43

[다시 찾는 울산 문화유산]고려 충신 정몽주 구국충정 면면히
23) 대곡천·반고서원 유허비
[2008.03.18 22:25]

반구대 입구에 서면 반고서원 유허비 3기가 세워져 있는 비각이 눈에 들어온다. 김동수기자
유배생활 틈틈이 대곡천·반구대 찾아
임금 향한 일편단심 절경에 담아 읊어
울산·언양 유림 학문의 표상으로 추앙


"나그네 마음이 오늘은 더욱 처량하여/풍토병 기운 서린 바닷가에서 물에 나아가고 산에 오르네…(중략)…학은 맑은가을이 기꺼워 푸른 하늘로 올라가네/손으로 국화를 꺾어 잠시 한 번 취하는데/옥 같은 미인은 구름 너머에 있네."

반구대에서 포은 선생이 음력 9월9일 중양절날 지은 <중양절 감회>라는 시다. 여기서 '미인'은 임금을 지칭하는 것으로, 울산지역 사림은 이 시에서 유배를 당하고도 임금을 생각하는 포은의 충정을 더욱 높이 사게 됐다.

포은 선생이 떠나고 난 뒤에도 울산과 언양의 많은 학자들은 포은의 발자취를 더듬어 대곡천과 반구대를 끊임없이 찾았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포은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표상으로 더욱 높이 추앙받았다.

1678년(숙종4년) 조선시대 울산사림은 마침내 구강서원을 창건하고 포은 정몽주 선생과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했다. 또 그로부터 34년 뒤인 1712년(숙종 38년)에는 언양사림이 반구대 아래에 반고서원(槃皐書院)을 창건하고 역시 포은 정몽주 선생과 회재 이언적 선생, 한강 정구 선생을 모셨다.

서원 창건록에는 경주가 고향인 회재 이언적 선생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이 곳에 들러 쉬어간 적이 있고, 한강 정구 선생은 이 곳에 머물러 살고싶어 했다고 기록돼 있다.

반고서원은 후일 반구서원(盤龜書院)으로 이름이 고쳐졌다. 1728년(영조4년)에는 화재로 타버렸다가 1년 후에 다시 세워졌으며, 흥선대원군 때는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1967년 사연댐을 건설하면서 반구서원이 물속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지금도 언양지역 유림은 새로 건립한 반구서원에서 반구서원운영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3월에 삼현제를 올린다.

서원 건너편에는 유허비 3기가 남아 포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인데, 포은대영모비와 포은대실록비, 반고서원유허비실기 등이 그것이다.

포은대영모비는 언양사회를 이끌었던 유학자 송찬규와 권필운이 1885년 함께 비문을 짓고 송찬규가 글씨를 썼다. 또 포은대실록비는 1890년 송찬규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으며, 반고서원유허비실기는 1901년 언양군수 최시명이 비문을 짓고 김효동이 글씨를 썼다.

이들 비석 3기는 지난 1965년 지금의 비각으로 옮겨져 왔으며, 지난 2004년에는 울산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됐다.

포은이 다녀간 대곡천은 이처럼 훌륭한 풍광을 갖추고 있어 풍류를 아는 시인묵객들은 모두가 이 곳을 찾아 많은 시를 남겼다.

울산부사를 역임했던 권상일(1679~1759)은 <반구대에서 즉석으로 짓다>는 시를 지었다.

이어 최종겸(1719~1792)은 <반구대에서 열가지를 읊다>란 시에서 집청정, 비래봉, 향로봉, 옥천동, 포은대, 선유대, 관어석, 망선대, 완화계, 청몽루에 대해 각각 오언절구로 노래했다.

언양지역 유학자 송찬규는 대곡천의 다른 이름인 반계(磻溪)의 아홉 구비를 노래한 반계구곡음(磻溪九曲吟)을 모은대 시집에 남겼다.

이밖에도 권해, 이양오, 이만부, 최남복 등 많은 시인묵객들이 대곡천과 반구대의 절경을 시로 읊어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대곡천과 반구대가 지금처럼 다시 재조명을 받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곡천 암반에는 공룡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져 있고,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에는 선사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3기의 반고서원 유허비에는 충신 정몽주의 정신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대곡천과 반구대 일대는 까마득한 태고의 시간부터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인류역사 박물관 그 자체다. 대곡천은 돌처럼 내려앉은 시간의 무게와 그 깊은 울림으로 우주 속 한 점 티끌에도 못미치는 인간들에게 근본과 겸양을 가르치고 있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울산시태화강카페  http://cafe.daum.net/wm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