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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숲의 풍경속에 사람이 스며들다

파랑새/송이갑 2009. 11. 7. 06:00

물과 숲의 풍경속에 사람이 스며들다
[기사일 : 년 월 일]  
[울산의 재발견] 사연리~한실마을~천전리 옛길  

 


사연댐 동편 길에서 본 전경. 형형색색의 단풍옷을 갈아입은 산들과 물빛이 잘 어울린다. 댐 상류 오른쪽으로 한실마을과 반구대암각화가 있다.
 

 전국에 걷기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야말로 광풍이다. 느리게 걸으면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볼만한 장소와 걸을만한 길이 있으면 사람들이 몰린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들이 '걷는 길'을 앞 다퉈 만들고 있다. 울산도 예외는 아니다. 남구의 솔마루길, 북구의 동대산 숲길, 중구의 입화산 길, 동구의 염포산 마골산 봉대산 생태탐방 길이 있다. 울주군에서 발원해 중구와 남구를 가르는 태화강 곳곳에도 걷는 길이 많다. 하지만 이 길들은 나름대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만 올레길과 둘레길에 비교할 때 부족함이 많다. 울산에도 전국적으로 내 놓을 만한 명품 길을 만들 순 없을까.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길. 겹겹이 막아선 산길을 헤치면 숨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길.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색깔이 완연한 길. 울주군 반연리 사연마을에서 시작해 사연호 변을 따라서 산길을 걷다가, 울산의 오지 한실마을에서 목을 축인 후, 반구대암각화를 거쳐 천전리각석으로 이르는 길. 울산을 상징할 수 있는 둘레길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5~6시간 넉넉히 잡아 쉬엄쉬엄 이 길을 걸어 보았다.
 
 #사연호의 푸른물과 붉은 단풍
 천전리 각석에서 시작할까, 사연마을에서 시작할까 고민을 하다 시내에서 가까운 사연마을을 출발지로 삼았다. 언양국도를 따라 가다 울산과학기술대학교가 있는 반연마을 진입로에 차를 세웠다.
 가을 꽃들로 조경된 대학의 진입로가 시원하다. 하지만 진입로를 외면하고 사연댐이 보이는 옛길로 걷기 시작한다. 5분여를 걸어가니 입구에 '무학산 산장'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진 농로가 나온다. 농로의 끝에서 대곡천을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농가 몇 채가 있는 마을을 만난다. 마을 한가운데로 난 길을 잡으면 얼마가지 않아 오솔길이 나온다.
 오솔길 초입이 가파르다. 숨이 빨리 차 오르지만 가파른 만큼 산 마루를 빨리 볼 수 있다. 불과 10여분만에 능선 마루에 오를 수 있다. 단풍든 활엽수 사이로 푸른빛의 사연호가 언듯언듯 보인다.
 사연호는 지난 1965년 울산공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세워졌다. 지금은 식수 전용댐으로 울산시민들의 생명줄이다. 사연호는 울산태화강의 발원지인 백운산 탑골에서 시작돼 천전리각석, 반구대 암각화를 거쳐 사연리에서 태화강 본류와 만나는 대곡천을 막은 것이다. 사연댐은 대곡천 주위에서 이뤄진 울산의 문화를 수장시켜버렸다. 지난 2005년에는 사연댐 상류 대곡천에 대곡댐이 완공되면서 그나마 살아남았던 수많은 선사인들의 삶의 흔적들을 지웠다.
 
 #깊은 숲의 또다른 선물 오솔길
 호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금세 땀을 식혀준다. 가을바람이 차다. 골바람에 밀리 듯 산속으로 난 오솔길을 걷는다. 오솔길은 산 골 깊은 곳으로 나지막한 경사를 이루는 내리막이다. 그동안 인적이 뜸했던 탓일까. 얼마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숲은 깊다. 울창한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오솔길에 가득하다. 사람의 발길에 채이지 않은 오솔길 낙엽이 정갈하다. 내리막이 끝날 쯤 계곡이다. 가을 가뭄 탓인지 계곡물이 말랐다. 지난여름 시원했던 물길은 간데없다.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고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제법 길게 늘어진 오르막길이 힘에 부친다. 사위가 온통 나무들로 빽빽하다.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깊은 숲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숨이 목젖까지 오를 즈음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서 한실마을을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올라선 임도에서 보이는 오솔길을 곧장 내려가는 방법과 임도 오른쪽으로 2킬로미터 정도 따라가다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타고 내려가는 방법이다.
 사연호와 근접한 길을 가기위해 곧바로 오솔길에 진입했다. 오솔길은 계곡을 따라 가파르게 하강한다. 숲은 더욱 깊어진다. 가파른 길이 완만해지는 곳에 농막이 있다. 농막에 사람이 있다. 산길을 걷는 동안 인기척조차 들을 수 없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은 다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농막 앞에서 쉬던 이가 "목이나 축이고 가라"고 손짓을 한다. 등산객이 건네는 소주 한잔이 달다. 가져 온 감을 가방에서 꺼내 건넨다. 소주와 단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산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단소주와 단감. 소주 몇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산을 이야기하고, 눈앞에 보이는 사연호를 이야기 한다. 세상의 번잡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40년이상 고립된 한실마을
 낯선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뒤로하고 마른 계곡을 따라 희미한 산길을 재촉했다. 계곡 주위에 돌 축대가 많다. 아마도 수몰전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농사를 지은 모양이다.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길을 찾았다 잃어버렸다는 수차례 반복하다 결국 길을 잃어버렸다.
 지난 여름 지인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계곡을 벗어나 곧바로 사연호 쪽 능선을 오르기로 했다. 길이 없는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협곡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가파르다. 몇 차례 쉬면서 오른 끝에 다행히 능선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능선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면 그만이다. 마을 쪽에서 전동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 소리도 아득하게 들린다. 한실마을이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한실마을은 댐 건설 당시 80여 가구가 있었지만 대부분 수몰지역에 편입되고 한쪽 모서리가 아직도 동네를 이루면서 남아 있다. 사연댐 수몰 후 40여년 이상 지리적·경제적으로 고립된 마을이다. 한실마을은 지금 정비가 한창이다. 울산시와 울주군이 농업기반시설 확충, 경로당 건립, 소규모 마을하수처리장 설치 등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한실마을에서 이세상과 연결되는 길은 반구대 암각화 쪽으로 가는 도로가 유일하다. 포장은 되어 있지만 승용차도 교차하기 어려운 좁은 길이다. 하지만 좁은 한실마을 길을 빠져 나오는 길은 여유롭고 아름답다. 나지막한 산허리를 수놓은 형형색색 단풍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암각화와 각석의 역사속으로
 그 길이 끝나면 반구대 암각화다. 암각화는 지난여름 사연댐 담수가 이뤄지면서 물속에 잠긴지 오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그림은 안내판으로 대신한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암각화 보겠다는 마음만이 아닌듯하다.
 반구대암각화를 돌아 나와 다시 집청정을 지나 암각화 박물관 쪽으로 걸었다. 굽이도는 대곡천을 병풍처럼 드리워진 기암절벽 위로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 사이로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잔잔히 흐르는 호수와 어울려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계곡 건너편 반구서원 유허비(盤皐書院 遺墟碑)가 보인다.
 암각화박물관 앞에서 천전리각석 쪽으로 길을 잡았다. 계곡을 휘돌아 20분가량 걸으면 천전리각석이다. 각석 앞쪽 너럭바위에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전 전기 백악기 시대에 서식하던 중대형 공룡들의 발자국이다.
 
 #울산의 명품길 가슴에 품다
 울산은 우리나라 산업의 수도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울산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곳이 대곡천이다. 대곡천을 따라 만들어진 길은 그곳에 얽힌 시간들 처럼 길고 험하다. 특히 한실마을에서 사연마을로 이르는 길은 금단의 길 처럼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길이다.
 현재를 사는 도시인들이 걷기만 하는 길이라면 개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울산의 미래를 상징하는 울산국립대가 위치한 사연댐 초입에서 한실마을,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박물관, 천전리각석, 대곡박물관을 잇는 '울산올레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글=강정원기자 mikang@ulsanpress.net 사진=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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