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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송이갑 블로그
공해도시 탈출 처절한 몸부림 본문
공해도시 탈출 처절한 몸부림
울산시의 '태화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정부 발간 지방혁신 우수사례집 '지방의 신화 창조'에 실려, 국내는 물론 세계에 친환경 도시 홍보에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자는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발간돼 국내는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대학도서관 등에, 국외는 해외공관, 국내 외국대사관, 한인회, 해외 주요 국가 대학 연구소 등에 배포됐다.
본보는 울산의 혁신사례로 울산대 안성민 교수가 집필한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태화강 만들기'를 원고를 입수해 모두 5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안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울산시민들의 태화강 자연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 상하류 환경기초 인프라 확충, 태화강 수계 생태복원, 태화강 주요 지천 수질개선 과정 등을 자세히 기술했다.
혁신은 기존의 제도와 관행을 통하여 달성할 수 없었던 성과를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굴과 실행을 통하여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화·지방화는 무한경쟁 시대를 열고 우리는 매일 혁신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필요성은 죽어가는 태화강을 지켜봐야 했던 울산시민들도 통감하였다.
1962년 울산시의 승격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여 온 울산은 산업수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지만 공해도시의 불명예도 안게 되었다. 공해도시 울산은 돈을 버는 도시이지만 사람이 살만한 도시는 아니기에 곧 떠나야 할 도시라는 이미지를 안게 되었고 울산시민의 자존심을 훼손하여 왔다.
울산은 공해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생태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태화강 살리기'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태화강 살리기'는 단순히 울산시가 예산을 쏟아부어서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고, 울산시, 울산시민, 그리고 학계가 함께 참여하고 협력하는 혁신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울산이 환경오염도시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태화강 살리기'에 매진한 것은 태화강이 울산시민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울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울산의 태화강은 울산시민들에게 생활의 중심지,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고,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태화강은 1960년대 이후 울산의 산업화와 그에 따른 인구급증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울산은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였고 1995년 울주군을 통합한 울산은 1997년 7월 15일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시로 승격되었으며, 2002년 월드컵 대회의 경기장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울산시의 급격한 인구증가와 이로 인한 택지부족으로 태화강의 중·상류 지역에 이르기까지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농촌경제의 활성화 정책으로 상북면 등의 농공단지와 축산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이들이 쏟아내는 각종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및 축산폐수가 태화강의 수질을 악화시켰다. 태화강 수질은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기준으로 1991년 11.7mg/ℓ로 5등급을 초과하였으며 1997년까지 최악의 수질상태를 유지하였다.
태화강의 수질악화는 1992년 이후 다섯 차례의 물고기 떼죽음을 가져왔다. 이같은 물고기의 떼죽음은 먼저 갈수기에는 하천유지용수와 용존산소의 부족 때문이고, 우기에는 하상에 퇴적되어 있던 각종 오염물질이 강우의 영향으로 불어난 강물로 인해 전도하면서 하천수질을 악화시켰고 또한 강우를 틈타 공장과축사에서 유독성 오·폐수를 태화강에 방류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태화강이 죽음의 강으로 변모하여 가는 것은 단순한 환경오염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화강은 울산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는 강이었기에 시민들은 마음의 고향을 잃어 갔고, 이러한 상실감은 울산시민들의 정주의식을 낮추었다.
시민단체들은 관계당국에게 울산의 상징인 태화강의 수질을 보전하고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촉구하게 되었다. 태화강의 수질오염 문제와 함께 시민들의 우려를 낳은 것은 1987년에 수립된 태화강 하천정비기본계획이었다. 태화강의 하천정비기본계획에 의하면 울산의 명물인 태화강의 십리 대숲이 사라지게 되었다.
태화강 하천정비기본계획은 1961년에 제정되고 1981년에 대폭 개정된 하천법에 기초하여 수립된 것으로 치수기능을 주로 고려하였다. 하천법 제25조 제1항 제8호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에서 수고 1미터 이상의 수목은 건설부 장관의 허가사항으로 규정하고 같은 법 시행규칙 제7조 제3항에서 하천관리청이 식수를 허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1987년에 수립된 태화강 하천정비기본계획은 하류부의 둔치 내의 대나무 숲을 모두 제거하는 조건으로 제방 축조 및 단면계획을 수립하였다.
태화강의 수질이 개선된다 하여도 십리 대숲과 같은 태화강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자연성을 잃어버린다면 태화강은 더 이상 울산시민의 마음의 고향이 되지 못한다. 울산의 상징으로 울산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십리 대숲의 제거 계획은 울산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게 되었다.
울산시민들은 태화강을 잃는 것은 오염으로 찌든 공해도시의 낙인을 찍는 행위이며 울산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을 잃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자연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태화강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은 십리 대숲의 보존을 위한 운동과 태화강을 생태하천으로 만들자는 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태화강 살리기'를 위해서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지만 태화강은 국가하천 구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의지만으로 태화강의 정비계획을 변경할 수는 없었다. 국가의 하천정비기본계획의 변경을 요청하기 위한 타당한 논리를 제공해야 했고 태화강을 생태공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울산시민의 의지를 모으고 울산시와 구·군들이 함께 태화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결국 태화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시민, 학계, 지방정부가 협력하는 거버넌스(government)를 구축하고 중앙정부의 협조를 이끌어 내야하는 혁신이 필요했다.
〔울산신문 「안성민 교수의 살아숨쉬는 태화강」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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