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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날' 태화강 찾은 전국 환경단체회원들과 보낸 하루]

파랑새/송이갑 2011. 10. 20. 08:28

거대한 선사유적 경이로움에 놀라고
말끔하게 변한 태화강에 또한번 놀라
['강의 날' 태화강 찾은 전국 환경단체회원들과 보낸 하루]
2011년 08월 25일 (목) 20:03:05 최창환 cchoi@ulsanpress.net

   
▲ 공업화의 뒷전에 밀려 한때 '죽음의 강'으로 내몰렸던 태화강이 울산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나 전국 환경단체 회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강과 도시는 늘 공존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문명을 꽃 피운다. 울산이란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울산 사람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태화강을 원천으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삶의 원천인 강을 시나브로 파괴시켜나갔다. 울산의 태화강도 공업화의 뒷전에 밀려 한때 죽음의 강으로 내몰렸다. 그 태화강이 지방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생명의 강'이 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제10회 한국 강의 날을 맞이해 전국 환경단체 회원들이 태화강을 찾았다. 그들은 우리나라 고대문명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태화강 상류 반구대암각화와 새 생명을 얻은 태화강 생태공원, 장생포 고래박물관을 찾아 산업도시가 아닌 생태환경도시 울산을 체험했다. 그들과 동행하며 태화강을 다시 보았다.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감탄
울산에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유적이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반구대암각화와 1억년전에 형성된 공룡발자국과 신라화랑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국보 제147호 천전리 각석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역사체험으로도 최고를 자랑한다.
 이 유적을 보기 위해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안개 낀 대곡천을 따라 걸어갔다. 암각화 박물관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대숲 터널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 암각화로 가는 길은 고향길처럼 정겹고 상쾌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 있는 시민들.
 반구대 암각화에 도착했다. 하지만 암각화는 대부분 물에 잠겨 있었다. 함께 간 이들이 망원경을 이용해 암각화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된 것은 1971년. 그보다 전인 지난 1965년 울산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사연댐 때문에 반구대는 연중 5~6개월은 잠겨있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태화강 상류인 대곡천 바위절벽에 무려 200여점의 선사시대 그림이 새겨져 있다. 또 울타리, 그물, 배와 작살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 등이 섬세하게 표현된 암각화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포경유적이다.


 방향을 바꿔 천전리각석으로 향한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2km 정도 계곡 옆 등산로를 따라 거슬러 오르면 또 다른 국보 천전리 각석을 만날 수 있다.
 천전리 각석(국보제147호)은 지난 1970년 12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유적으로 가로 9.7m, 세로 2.7m의 직사각형 바위다. 적색빛을 띄는 이 암각화는 윗부분이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천전리 각석에서 개울을 건너면 1억년 전 살았던 초식공룡 울트라사우루스를 비롯해 여러 유형의 공룡들이 배회했던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당장에라도 공룡이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 나 올 것 같은 신비감마저 감돈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돌아본 김철민(39)씨는 "공업도시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선사유적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거대한 암각화에 경의로움 감출 수가 없다"고 전했다.
 

   
▲ 태화강 십리대밭.
#맑아진 태화강에 환호
대곡천 일대 태화강 상류에서 흘러든 물은 사연댐을 지나 곧장 도심 한가운데로 내달린다. 지금 태화강은 1만여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을 씻고 옛 모습을 다시 찾았다.
 은어와 연어, 황어, 가물치, 고니, 원앙, 백로, 수달, 삵 등 모두 427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강으로 부활했다. 수 많은 철새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 철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쉼터임에도 분명하다.


 이제 태화강은 울산시민들의 자부심이다.
 태화강을 고수부지를 걷다보면 경치 좋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달라진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삼호교와 태화교 사이에 위치한 '태화강 십리대밭'을 거닐면 누구나 영화 한편의 주인공이 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홍수로 인한 범람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백사장에 대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나무 숲을 돌아 드넓은 태화들로 나오니 최근에 조성된 오산못이 보인다. 오산못은 실개천의 시작 지점으로 명정천과 연결돼 있다.
 또 벽천형태로 자연석을 쌓고 수련, 부들, 창로 등 수생식물을 식재해 습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일행은 부슬비가 내리는 태화강대공원의 덩굴식물 터널을 걸었다. 그야말로 여름정취를 만끽 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온 윤미자(31)씨는  "울산은 공업도시, 산업도시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점점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하는 것 같다"며 "깨끗한 강물과 함께 다양한 생태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이곳은 이제 울산여행의 필수코스임에 분명하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고래에 탄성
태화강은 다시 울산만과 동해로 흘러든다. 고래를 볼 수 있는 곳 장생포에 도착했다.
 한창 전성기 때에는 22척에 달했던 포경선이 검푸른 울산 앞바다를 주름잡고 다녔지만 이제는 불과 한척만이 고래박물관 한 켠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당시 고래 포획량으로 살펴보면, 36년의 일제 강점기 동안 6,500여마리, 이후 58년부터 85년까지는 무려 15,500마리가 넘었다. 특히 지난 69년 목선이었던 포경선이 철선으로 바뀌면서 한해 평균 700마리가 넘게 잡혔다고 한다.


 이 때문에 70년도 당시에는 장생포에 가면 개도 천원짜리를 물고 다니고, 고래 잡는 포수는 군수자리도 부러워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래 개체수의 급감으로 1986년 국제적으로 상업 포경이 금지되면서 이제 장생포에서도 고래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
 이후 고래 동네인 장생포에는 쇠락하게 됐고 얼마 남지 않은 고래고기 집과 귀신고래가 지나간다는 극경회유해면도 이제는 조형물로만 남게 됐다.


   
▲ 제10회 한국 강의 날 울산대회에 참가한 전국 환경 활동가 및 단체 회원들이 태화강에서 용선체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생포에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이 생기면서 그 옛날의 향수와 고래를 느낄 수 있다.
 장생포고래박물관에서는 고래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고래가 헤엄쳐 다니는 해저터널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해저터널에서 올려다보면 바다 속에서 고래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방인에게는 분명 신비한 광경이다.


 어린이 체험관에는 고래의 진화 과정과 각종 고래의 크기를 다른 동물이나 사람 몸무게와 비교해 보는 프로그램, 흡사 고래에 잡혀 먹힌 듯 거대한 고래 갈비뼈 아래를 걸어가며 고래 뱃속을 관찰할 수 있는 모형도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큰 인기다. 고래의 두개골·골격 등을 살필 수 있는 포경역사관도 인기가 있다.
 귀신고래관을 들어서면 실물 크기의 귀신고래 모형과 고래가 포효를 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전시관을 나오면 탁 트인 동해 바다의 정취도 느낄 수 있고, 고래잡이 어선들의 품이라 할 수 있는 장생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에는 우리나라 마지막 포경선 제6진양호, '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 기념비'를 비롯한  볼거리가 더 있다.


 동해 바다에서 춤을 추고 있는 고래를 보기 위해 '고래바다 여행선'을 타고 동해로 나가 것도 울산여행의 백미다.
 고래를 보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이미나(21)씨는 "고래의 생태는 물론 고래잡이에 쓰였던 그물 작살 등 도구, 고래 해체 모습까지 볼 수 있어 뿌듯한 여행이 됐다"고 기뻐했다. 

울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