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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복의 아침 편지(마늘,꽁치,쇠고기)

파랑새/송이갑 2008. 7. 3. 06:40

이태복의 아침편지

 

마늘, 꽁치, 쇠고기

 

북한의 영변핵원자로의 냉각탑이 폭파됐다. 이로써 북-미 간에 팽팽하게, 그러면서도 지루하게 지속됐던 북한핵문제가 1차 정리되는 수순에 들어갔다. 미국은 테러지원국이라는 딱지를 떼주고 폭파비용 250만불을 포함해 다양한 경제적 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북한으로서는 핵카드를 통해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협상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대미관계를 개선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반면에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어있다. 부시정권의 갑작스런 대북정책전환으로 기존의 정책을 유지할 수도 없게 됐고, 북핵문제의 당사자이면서도 철저하게 소외돼있다.

 

최근 북한측의 핵카드운용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과 한국정부는 하나의 국가, 정부로서 협상전략이라는 것을 갖고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북미관계가 진전되는 동안, 한국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부시정부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주지도 않았다. 국제적으로 다 알려진 후에야 라이스 미국무부장관이 한국에 들러 립서비스를 해주고 만 것이다. 북핵문제의 해법 마련에서만 그런 것인가. 아니다.

 

국민들의 들불같은 촛불시위에 밀려 실질적인 추가협상에 들어갔으면 국민들의 걱정을 말끔히 씻어내고 검역주권을 분명히 하는 내용을 가져와야 하는데, 한국정부의 통상대표들은 부시정권과 미축산업자들의 논리를 수용해 민간자율규제와 미덥지 않은 위생조건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것도 관보에 즉시 게재한다는 조건부 보따리였다. 도대체 한국의 통상대표들은 누구를 위해 협상하는가. 시간이 없고 아쉬운 건 미국의 육류업자들이고, 부시정권이 아닌가. 이 기본적인 정세판단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올해 안에 한미FTA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미국을 자극시켜서는 안된다는 협상팀의 자세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미의회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올해 안에 한미FTA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무엇이 무서워서 한국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게 뻔한 협상을 해놓고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정부를 믿어달라는 소리를 하는가?

 

한국정부의 한심한 대외협상력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가 청와대에 근무할 때도 마늘, 꽁치문제가 있었다. 그때 필자가 절실히 느꼈던 것은 이런 수준의 정보력과 어던 경우에도 국가이익을 지키겠다는 협상태도가 보이지 않고 전략부재의 상태에서 대외협상을 할 경우 백전백패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정부의 협상력은 그제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정부를 대표해 협상에 나섰으니 결과는 처음부터 뻔한 것이었다. 마늘이나 꽁치는 중국과 러시아였지만, 쇠고기 상대는 미국이 아닌가.

 

그나저나 이제 정부도 국민도 앞길이 갑갑해졌다. 고시를 관보에 게재했으니 미국산쇠고기가 시중에 유통될 것이고, 먹거리안전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항의와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불법폭력시위를 명분으로 5공화국식 진압으로 되돌아갈 경우 반발과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게 뻔하다. 불행하게도 정부는 더 밀릴 수 없다며 폭력시위엄단방침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대외협상을 통해 국민적 단결을 만들어내고 법과 제도를 발전시켜가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갈등만을 만들어놓고 말았으니 한국사회의 앞길이 걱정된다.

 

이번 쇠고기사태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고, 국민들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더욱 고약한 것은 미국에서 광우병소가 발생하거나 검역부실로 위험물질이 유통되어 리콜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파동은 이명박 정부를 덮칠 뿐 아니라 다시 쇠고기 촛불로 발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현시점에서 최선의 방책은 무엇인가. 정부가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다시 협상에 나서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효력가처분신청에 대한 판단이 남아있어서 조금 지켜볼 필요는 있다. 만약 헌법재판소까지 정부와 국민의 정면충돌을 풀어갈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