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파랑새/송이갑 블로그

[스크랩]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본문

▒나의 이야기▒/♣나의요즘·자유글twitter,facebook,

[스크랩]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파랑새/송이갑 2008. 2. 23. 20:06

출처: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작금의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 분야 등 권력과 금력 면에서 기득권 계층의 정의롭지 못함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못함’의 정의는 매우 추상적이며 광범해서 쉽게 구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기준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러나 신 앞의 평등이나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사상을 대명제로 할 때,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정의로운 것이며, 반대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정의롭지 못한 것이 된다. 신 앞의 평등 또는 인내천 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주주의 탄생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발전 과정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법질서 확립 및 경제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의롭지 못함을 배척하고 정의로움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의 민주주의를 기본 정치체제로 하는 국가에서 모든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정의로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합리적인 법질서 확립이 필요하다. 권력이나 금력에 차별을 두는 법질서나 차별적 적용은 민주주의 발전에 중대한 도전이자 정의롭지 못함이 팽배하게 되어 사회적 혼란과 위기를 야기한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기업인이든 법조인이든 또는 일반 국민이든 모두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법질서에 의한 정의로움이 실현될 수 있다.





정치적 정의로움의 조건에 비해 경제적 정의로움의 조건은 다소 복잡하다.  경제적 정의로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법질서의 확립도 필요하지만, 자율적 규율을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의 경우에는 시장의 자율적 규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율적 규제는 거의 대부분 시장의 ‘효율성’과 ‘건전성’에 관한 것이다. 시장경제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법적 규제로는 ‘경쟁’ 극대화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공정거래법(독점금지법)과 소비자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소비자보호법 및 증권거래법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시장경제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규제로는 금산분리와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은행법(금산분리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화된 개방경제에서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국제적 자율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세력은 정치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독재정권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을 했지만, 사법적 정의로움과 경제적 정의로움을 실행한 것은 아니었다. 즉 정치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모든 국민들이 법 앞에 평등이 실현되는 사법적 정의로움과 경제적 정의로움을 실천하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법 앞에 평등한 사법적 정의로움을 실천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이들 민주화 세력들이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기득권화 되어버려 정경관언 유착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경제적 정의로움을 실천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 경제적 정의로움이고 그 정의로움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론을 몰랐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 정의로움에 대해 제대로 고민이나 연구를 해본 적이 없이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재벌 중심의 정경관언 유착의 정의롭지 못한 상태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경제적 정의로움을 실천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무지와 도덕적 해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중심인 참여정부와 대통합신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孤掌難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는 자신들의 정권은 ‘친기업정부’가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출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스스로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정부가 아니라 이념지향적 정부라는 한계를 표출한 것이다. 친기업 정부를 주장하려 했다면,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는 자신들의 정부가 반소비자적, 반투자자적, 반환경친화적 정부라는 오해를 사지 않을 방도도 함께 고려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정의로움에 관한 이런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조차도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이명박 당선자 역시 이념지향적 집단임을 보여준 것이다.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 역시 마찬가지로 무엇이 문제이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화운동 세력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자신들의 주특기인 이념적 슬로건으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결국 이번 정권교체도 시계추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지하기는 참여정부나 이명박 당선자 측이나 매 한가지인 셈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자신들의 정부가 ‘친기업 정부’라고 말한 배경에는 지금까지 재벌기업들이 진보정권 하에서 정치적으로 또는 정책적으로 기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는 이념적 주장이 깔려 있다. 그러나 지난 90년대 민주화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3번에 걸친 정부 모두다 기업활동을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탄압한 정부는 없었다. 오히려 3차례에 걸친 정부 모두다 당초 경제적 정의로움과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립해주기를 바랬던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반칙과 편법을 묵인하고 지나치게 친재벌적 또는 재벌편향적 정책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비판과 정치적 심판을 받아왔다.





YS정부 때에는 어중이 떠중이까지도 재벌 흉내를 낼 정도로 재벌편향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IMF사태까지 초래할 정도로 친재벌적 정책 일변도였다고 할 수 있다. 상당수 급조된 준재벌 기업들이 IMF사태로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만을 남긴 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DJ정부는 IMF사태로 위기에 처한 재벌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민들의 세금을 쏟아 부었다. 반칙과 편법이 없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제대로 확립하지도 못한 채 그냥 쏟아 부어 넣은 것이다. 참여정부는 정권출범 초기부터 삼성그룹과의 유착설로 곤혹을 치를 정도로 친재벌적이었다. 삼성 출신의 최장수 정통부장관을 지낸 진대제씨를 기용한 것이나 참여정부의 국가전략이나 비전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존했다는 진보진영의 비판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대제씨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3류 쓰레기 정치꾼들처럼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배신을 때렸다. 물론 참여정부의 상당수 고위관료들도 배신을 때렸다. 한마디로 인의와 신의를 팽개친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한 자들에게 의지해서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국가를 운영해왔던 것이다. 한 마디로 옥석을 가릴 눈조차 없는 무능한 정부였던 것이다. 국가와 기업의 경영이 어떻게 차원이 다른지조차 구별 못하는 그런 정부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을 정통부장관이라고 앉혀 최장수를 시켰으니 IT관련 중소벤처 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정통부장관을 하던 시기에 결과적으로 중소벤처 IT업계가 반 토막이 났다는 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시정잡배들이나 조폭들도 인의와 신의를 중시하거늘 하물며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부류들이 서슴지 않고 인간의 기본도리를 저버리니 국가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사법계와 기업인들 너나 할 것 없이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자들이 이처럼 인간의 기본도리조차도 서슴지 않고 내팽개치는 짓을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으니, 일반국민들이라고 반칙과 편법을 하지 않으면 바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무슨 법과 질서가 지켜지겠는가! 도둑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꼴이니 무슨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의로움을 실현할 수 있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확립될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진보진영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한미FTA를 어느 날 갑자기 밀어부친 것도 참여정부였다. 말할 것도 없이 한미FTA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 대기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도시라는 말도 참여정부에서 생겨난 말이다. 부동산투기 대책과 관련해서는 건설업계를 편들다 못해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기반마저 잃어버리는 것조차도 모를 정도로 앞뒤 분간을 못하고 친기업적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바로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무지와 어리석음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의 심각한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무능과 일방적 착각에 빠진 어울리지 않는 ‘친기업적’ 행태로 인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부지리를 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친기업, 반기업이라는 말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첨예화되었다. 친기업 또는 반기업이라는 말은 DJ정부 때까지만 해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말이었다. IMF사태 직후 외자유치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시장의 폐쇄성과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 등을 투자유치의 걸림돌로 지적하는 과정에서 반기업 정서라는 말이 일부 사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론스타나 뉴브리지캐피털 등 투기적 펀드들이 한국의 IMF사태 위기를 이용해 한몫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재벌그룹들이 참여정부에서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DJ정부 때에는 DJ의 카리스마와 IMF사태 위기극복 그리고 기업구조조정(워크아웃)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반기업 정서라는 말을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2004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X파일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국민들의 재벌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IMF사태 후의 부실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그리고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카드사태 때 일부 재벌 총수들이 보여준 배째라 식의 행태에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기도 전에 또다시 X파일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X파일 사건을 친기업이라든지 반기업이라든지 이념적으로 본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피와 눈물로 이룩해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이자 정의롭지 못한 행위로 보았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시대적인 정경관언 유착을 바탕으로 재벌총수들이 반칙과 불법 및 편법적인 행위를 공공연하게 해온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 것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당시 재계는 이를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 때문이라고 오히려 반격했다. 마치 뭣 묻은 개가 뭣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 딱 그 꼴이라고 하겠다. 재계는 참여정부가 반기업 정서를 방치하고 있어 부당하게 재벌그룹 총수들이 비판을 받고 있다고 몰아 부쳤던 것이다. X파일 사건으로 해외 도피성 출국을 한 이건희 회장이 무슨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경제단체들은 재벌기업들이 마음대로 투자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가 경기를 살리려면 친기업 정서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들의 이런 황당한 주장에 대해, 참여정부와 과거 재벌과의 유착의 연장선상에서 기득권을 형성한 고위관료들 및 사법부는 스스로 법과 원칙을 무시했다. 반칙과 편법을 눈감았던 것이다. 그 대신 삼성 이건희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재 8천억 원을 사회헌납 하는 식으로 이를 무마했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이른바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5단체와 YMCA 등과 산자부 차관이 참여하는 ‘기업사랑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친기업 정서 확산을 위해 대국민 경제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재계의 주장에 따라 경제교육 강화를 위한 초중고 경제교과서 개편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완전히 참여정부나 재계나 모두 바보라도 이만저만한 바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연구소는 반기업 정서 주장에 대해 경제단체 관계자들과 정부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친기업 정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제품만 사주고 다른 제품은 사주면 안 되는 것인지, 또 삼성전자 제품만을 사준다면 LG전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SKT는 재벌그룹 기업이고 KT는 재벌그룹이 아니니 KT를 이용하면 안되고 SKT만 이용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니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이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을 짝사랑해주는 것이 친기업 정서인가라고 물었다. 그것도 아니면 재벌대기업들을 홍보해주고 찬양해주는 것이 친기업 정서인가라고 물었다. 재벌총수가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해도 그냥 못 본 척 해주는 것이 친기업 정서인가라고 물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과 편법으로 탈세와 경영세습을, 그것도 쥐꼬리만한 지분비율로 마치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하는 것을 봐주는 것이 친기업 정서이며 이들 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봉인가 라고 물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재벌총수들을 황제로 추대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황제가 여러 명 나오게 되니 어떻게 정해야 할 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선진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황금주 도입 주장도 서슴지 않고 했다. 비록 외국인의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이라는 구실을 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 재벌그룹의 기업지배구조를 보면, 기업들이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심각하게 위배되는데 친기업 정서와는 어떻게 양립하는가라고 물었다. 나에게 유리한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나에게 불리한 것은 한국식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어거지 논리냐고 물었다. 또 대한민국에서 재벌대기업만 기업이고 대기업들에 휘둘리는 중소기업들은 기업도 아니며,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도 아닌 것이냐고 물었다. 나아가 학교졸업 후 취업 한번 못해본 실업자나 백수 그리고 정리해고자는 대한민국을 떠나든지 죽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재벌대기업에 하등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말이다. 차마 그 짓은 하기 어려우므로 그래서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양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라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모두가 다 그냥 위에서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제교과서 논란이 생기기 직전에 우리 연구소는 초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를 다 수집하여 내용을 조사 분석한 바 있다. 초중고 사회과목과 경제교과서는 지난 1997년 IMF사태 전후로 제7차 교육과정에서 개편된 것이다. 시간이 10년 가까이 경과했기 때문이 데이터나 자료가 낡은 것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개편 당시 상황이 IMF사태 직후라서 극심한 경기침체와 대량해고로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심과 IMF사태 유발의 주요 원인중의 하나가 재벌기업의 부실경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수정의 필요성이 있는 곳도 있다. 그렇다고 초중고 경제교과서를 내용도 불분명하고 근거도 희박한 친기업, 친재벌 찬양가로 도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국 참여정부는 전경련이 제시한 경제교과서를 모델로 채택했다. 너무나도 충실한 친기업적인 정부였던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노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친기업성을 추월하려면 아마도 재벌기업들의 반칙과 편법을 다 눈감아 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정권을 아예 ‘친기업 정부’로 이름 지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년 2007년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삼성비자금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삼성비자금 사건 초기에 여야 정치권과 보수언론들이 보여준 작태는 참으로 이 나라가 정의로움을 실현하려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인지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였다. 그들은 김용철 변호사를 사이코 정신병자로 몰고 갔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참회와 양심고백 내용은 점차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결국 삼성비자금 사건에 검찰도 연루 의혹이 제기되어 특검을 실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내용은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소문으로 떠돌고 있던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삼성그룹의 핵심요직을 지낸 내부 당사자가 직접 양심고백을 통해 밝혀준 것뿐이다.





이미 사법권 스스로가 법과 정의를 포기한 마당에 특검을 한다고 한들 얼마나 진실이 밝혀지겠으며, 더군다나  ‘친기업 정부’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법질서를 강조하는 정권이 등장했으니 삼성비자금 사건과 관련된 정의롭지 못한 행위들이 제대로 규명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많은 시민사회단체나 언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받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삼성비자금 사건을 폭로하고 진실을 규명하여 이 땅에 경제적 정의로움을 구현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떤 재벌그룹 회장은 자신의 다 큰 아들이 술집에서 맞고 들어온 것에 분을 참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조폭을 동원하여 사적인 보복을 했다. 법과 질서가 이들에게는 얼마나 우습게 보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전현직 경찰의 사건비호 행위와 스스로의 자긍심과 정의로움의 구현을 포기한 채 사회통념상으로나 법적으로나 납득하기 힘든 관대한 처벌을 내린 사법당국의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신물이 날 정도로 만들어버렸으며, 역시 너희들끼리 끼리끼리 해먹고 있구나라는 자조적인 자포자기 심정을 갖게 만들었다. 재벌총수와 관련해서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국민들이 반기업 정서를 갖는 것도 기실 무리는 아니지 않겠는가!





이념공세를 펴고 있는 것은 오히려 과거의 기득권과 구태 속에서 제멋대로 아전인수격의 주장을 하는 재계인 것이다. 세상이 변했고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의로움을 구현해가야 할 판에 여전히 정경관언 유착을 기반으로 시대착오적인 친기업, 반기업의 이념공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념공세에 노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농락당했고,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아예 자청해서 이념공세에 발벗고 나서려 하고 있다. 그 결과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가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그저 시계 추를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한 것들 뿐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정의로움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재계는 더 이상 친기업, 반기업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이념공세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립하고 자신들의 주장처럼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하고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의로움을 구현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렇게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재벌기업이 경영세습과 사세확장을 위해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해왔던 정경관언 유착을 이용한 이념공세와 국민들과 법과 질서를 기만하는 조작을 공공연하게 한다는 것이 과연 글로벌 스탠다드이며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일인가? 뒤에서 몰래 한다고 해서 21세기 정보화 혁명 시대에 감춰질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또 그렇게 해서 과연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는가 말이다. 참으로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반기업 정서 주장의 논거로 재계가 내세우는 구체적인 내용은 불명확하다. 그저 막연하게 반기업 정서라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재계가 주장하는 반기업 정서 근원의 대부분은 행정규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공무원들과 재계의 억지주장이다. 예전에 비하면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불필요한 과잉 규제의 상당수는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과잉 규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부 부처와 관료들의 밥그릇 챙기기나 책임회피를 위해 만든 것이거나, 아니면 재벌기업들의 정치적 공세 차원에서 악용되고 있는 과잉 규제론이 대부분이다. 물론 공무원 밥그릇 챙기기 위한 불필요한 과잉 규제들은 과감하게 철폐해야 한다. 그러나 순환출자 허용을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 해제라든지 금산분리 폐지 또는 분식회계 처벌 금지라든지 수도권 과밀지역 또는 상수원보호구역에의 공해유발 공장설립 허가라든지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규제들을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과잉 규제라는 식으로 정치적 공세를 펴왔다.





재계가 주장하는 반기업 과잉 규제의 허구적 사례를 들어보자. 과거 수도권에 섬유공장 등 대규모 공장부지를 보유한 전통업종 기업들은 IMF사태 이후 경쟁력 상실로 사실상 공장이 폐업상태에 있는 곳이 많다. 이들 기업들은 DJ정부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줄곧 2,30년 전에 매입했던 공장용지를 주택용지나 상업용지로 용도변경을 해달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용도변경을 하면 순식간에 수천억 수조 원의 시세차익 또는 개발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처럼 일부 첨단업종 기업들은 수도권에 공장용지가 없어 상수원보호구역 내에 첨단업종 공장설립을 허가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주택용이나 상업용으로 용도변경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공장설립을 허가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이것을 부당한 규제이며 반기업 정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재계가 그렇게 주장하는 시장경제 논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공장용지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과 공장용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간에 사고팔고 하면 될 것을,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저 원가 경쟁력을 내세워 무조건 국가나 지자체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공장용지를 공급해주어야 하며, 다른 한쪽은 기업이 소유한 용지를 국가가 기업 마음대로 못하게 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장용지는 무조건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땅값이 올라 용지매각으로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노조단체들의 문제를 반기업 정서의 대표적 사례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노사간 문제는 재계 자신들의 문제이다. 기업들이 각자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노사간 협상을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화하고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하는 행위는 노측이든 사측이든 양쪽 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 작금의 양대 노총은 지도부가 이미 권력화되어 있고 이념화되어 있어 더 이상 노사협력의 공정한 파트너로서 그리고 조합원의 실질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양대 노조가 대변하는 이익이란 대기업과 공기업 등의 정규직 고액 연봉자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거나,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내부권력 투쟁에 빠져 있다.





 만일 기득권화되고 시대착오적 이념투쟁과 내부 권력 투쟁에 빠진 일부 노조단체의 본질에서 벗어난 강경투쟁 때문에 기업을 하기 어렵다면 문을 닫아 버리든지 해외로 이전해가든지 하면 된다. 그런 이유로 해외로 나가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 굳이 그런 황당한 노조를 바라보고 사업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그런 노조나 정치단체는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민노당의 붕괴가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노조가 있는 기업은 대개 사측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기업은 차라리 해외로 나가는 게 낫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번 해외에 가서 사업을 해보라. 미국이나 중국에서도 노사문제나 규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국내에서처럼 과연 반기업 정서 운운하며 주장할 수 있는지 한번 겪어 본다면, 그래도 한국이 얼마나 기업하기 좋은 천국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재계가 주장하는 시장경제 논리를 알아보기 위해 대학의 영미식 근대경제학 서적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대학의 경제학 교과서는 소비와 저축(투자)의 주체로서 가계에 대한 설명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리고 생산의 주체로서 기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주체로서 정부 정책수단과 후생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 정책수단에서 방법론적으로 케인지안과 통화론자의 모델이 갈린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모든 정책적 목표와 수단은 소비자임과 동시에 투자자인 가계를 보호하는데 최우선적으로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기업은 최종적으로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기업 그 자체가 절대로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목적이 될 수가 없다. 더욱이 반칙과 편법으로 세습되는 특정 재벌그룹의 오너일가가 민주주주의 시장경제의 전부가 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고 우리 연구소가 재계의 반기업 정서 주장을 근거 없는 이념공세로 비판한다고 해서, 대기업 자체를 반대하는 그런 유치한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삼성전자든 현대자동차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기업이다. 그 기업에 수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느 나라 경제이든 각자의 사정에 맞게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자영업자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공정한 게임의 룰에 따라 공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업종과 경쟁환경에 따라 대기업이 보다 효율적인 경우가 있고 중소기업이 보다 효율적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새로운 벤처기업이 싹을 틔워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역동성과 모험심으로 넘쳐나는 시장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한번 재벌기업은 영원한 재벌기업이 되는 그런 폐쇄적인 경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경제에서는 재벌기업이 제조, 서비스, 금융업종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싹쓸이를 하는 산업지배자가 되기 때문에 돈 되는 벤처기업이 절대로 대기업으로 클 수 없다. 대기업으로 크기 전에 재벌기업에 다 먹혀버리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이 자기 돈으로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데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남의 돈을 마치 자기 돈인 양 그것도 순환출자 방식으로 사업다각화를 하는 것은 중소벤처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경제 전체로도 역동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연구소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협하는 반칙과 편법 행위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한다.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의로움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법질서를 문란시키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정경관언 유착에 의한 기득권 계층의 정의롭지 못한 행위, 공정한 게임의 룰을 왜곡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그것이 재벌총수든 정부관료든 여야 정치인이든 사법인이든 심지어는 대통령이든 어느 누구라도 경제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실패의 최대 원인 중의 하나로 옳든 그르든 질러대야 할 곳에서 질러대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들은 일단 확실하게 질러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참여정부는 부동산투기와 같이 질러대야 할 곳에서 확실하게 질러대지 못함으로써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질러대야 할 곳에 질러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청계천개발사업과 같이 잘했건 못했건 일단 질러댄 것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 주요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단 이런 질러대기 행태는 이명박 당선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지자체장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콘크리트사업에 질러대기를 하는 것이 선거 때에 유권자들에게 표시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올바른 제도개선이나 합리적인 정책보다는 토건사업과 같은 대규모 질러대기 사업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질러댄 대부분의 콘크리트 사업이 대부분 실효성이 없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하든지 아니면 수많은 시행착오로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면서 엉망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 질러대기 사업으로 막대한 국가예산만 낭비되고 국가채무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방공항사업, 지역관광개발사업, 고속철사업, 인천공항사업, 시화호와 새만금사업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낭비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주변 교통량이나 기반시설, 환경영향 등을 감안하지 않은 난개발 식의 재개발사업 등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나 한나라당이 경부대운하 사업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표나는 질러대기 사업에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앙이든 지방이든 공무원들 대다수는 사실 이런 질러대기 사업을 대환영한다. 대환영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이 앞뒤를 재지 않고 막무가내 식의 질러대기 사업들을 벌이는 까닭은 모두 자기 돈이 아니라 나랏돈이기 때문이다. 나랏돈이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랏돈이기 때문에 어디로 어떻게 새든 말든 관계가 없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막말로 국가의 장래나 자식세대들을 감안한 국민의 편익과 부담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저 앞뒤 가리지 않고 질러대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서울이든 지방도시든 도시계획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는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자신들의 정칙적 이익을 위해 이 놈이 질러대고 저놈이 질러대다 보니 아무리 도시계획을 수립한다 해도 온전하게 지켜질 리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신창이가 된다. 시간적 공간적 시스템적 사고를 바탕으로 수립한 도시계획은 온데간데 없고 완전히 무작정 갖다 쑤셔 넣는 식의 난개발만이 난무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도심은 말한 것도 없고 부도심 모두가 극심한 교통정체에 빠지게 되고, 도시기능의 유기적 분화는 온데 간데 없으며 온갖 곳이 똑 같은 모습의 퇴폐적 카오스를 연상케 한다. 그 결과 엄청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킨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개발이익을 챙기는데 눈이 먼 나머지 도시환경이나 미관 따위는 완전히 딴 나라의 사치스런 이야기가 된다. 아예 발을 내밀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 일본 동경과 같이 100년 도시계획이라는 말은 완전히 딴 나라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의 무모한 질러대기는 참여정부의 경우와는 반대로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앗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을 특정 재벌그룹에 넘기기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질러댄다면 이미 외국인 지분비율이 60%를 넘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대부분은 산업자본이든 금융자본이든 외국인이 주인행세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은행 하나를 특정 재벌그룹에 넘겨주기 위해 모든 시중은행을 외국인에게 주인 찾기를 해주는 셈이 된다.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과연 이런 문제를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자신들의 무지함에 의한 막무가내 식의 질러대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보고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고 있는지 말이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혼란이나 교육개편 문제 등도 마구잡이 식의 질러대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 연구소는 참여정부 실패의 최대 원인으로 관료정치화를 비판했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참여정부 세력들이 경제문제에 대해서 관료들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던 탓에 관료들에게 모든 국가운영을 철저히 의존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철석같이 의지했던 관료들 역시 무지함과 도덕적 해이로 정책실패를 반복함으로써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정부개혁의 절실함을 강조해왔다. 이런 주장을 이명박 당선자 측이나 한나라당에서 열심히 눈여겨 보았지 않나 싶다. 정부개편을 강조한 것을 보면 우리 연구소가 주장한 것과 레퍼토리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장성 등 정부개혁 사례를 언급한 것을 보면 특히 그렇다.





우리 연구소가 볼 때 이들은 정부개혁의 핵심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정부부처를 두 개를 하나로 만들든 하나를 두 개로 만들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정부개혁을 어떻게 한다는 복안이 없이 그저 정부조직 개편을 해야 한다는 질러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우리 연구소는 각 분야에 걸쳐 정책실패의 원인과 정부개혁의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 이들이 헤매고 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이들 역시 정부관료들에 얹혀 사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일부 어리석은 재벌오너들은 이명박 당선자의 친기업 정부와 질러대기에 같이 희희낙낙하며 춤을 추고 있다. 마치 차기 정부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변한다. 차기 정부라 한들 5년이다. 5년 후에 정권이 바뀌게 된다면 또다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업인은 절대로 정치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인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 오로지 소비자와 경쟁으로 넘쳐나는 시장이다. 과거처럼 정경관언 유착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든지, 반칙과 편법의 특권을 누려보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정권이 탄생했기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정권이 탄생했기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그는 기업인으로서 이미 자격미달이며 더 이상 기업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경영하는 기업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만일 그런 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일반투자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수익성이 좋은 투자안이 있는데도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투자를 하지 않고 수익성이 나쁜 투자안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유로 투자를 강행한다면 일반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이제 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정의로움을 어느 정도 이룩했지만, 경제적 정의로움은 여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차례에 걸친 민주화 정부 모두 정권출범 초기부터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그리고 친기업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모든 정권들이 출발부터 정치자금 문제나 도덕성 문제로 정의롭지 못한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 권력과 금력을 지닌 기득권 계층의 반칙과 편법에 대해 정경관언 및 사법적 유착구조를 과감히 타파하고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권력과 금력 그리고 사법계 서로가 서로의 정의롭지 못함을 약점 잡고 눈감아 주는 식으로 유착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물고 물리는 기득권의 철옹성을 유지해온 것이다.





결국 이들 세 차례의 민주화 정부 모두가 경제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정부로 끝나고 말았다. 그 결과, 지난 15년 동안 한국경제는 IMF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국가채무와 가계부채 급증, 양극화 심화, 교육의 붕괴, 반칙과 편법을 가리지 않는 투기심리의 만연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총체적 성장잠재력 저하라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만 것이다.





차기 정권 역시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친기업 정부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차기 정부 역시 출발부터 도덕성 결함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나아가 차기 정부 인수위가 발표하는 내용을 보면 이들 역시 3차례의 민주화 정부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경제적 정의로움에 대해 무지하다 보니 출발부터 그저 맹목적인 우향우의 이념을 앞세워 막무가내 식의 질러대기를 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정부가 반복되고 무지함과 도덕적 해이로 막무가내 식의 질러대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그 모든 피해는 우리들의 자식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자식세대들과 자식들의 자식세대들 또 그 자식들의 자식세대들은 자신들이 전혀 질러대지 않았음에도, 질러댈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전문적 역량을 갖춘 자식세대들 스스로가 중심이 되는 정의로운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자식세대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의로운 정부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정의로운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식세대들은 지금 새로운 개혁세력을 형성해가야 한다. 20~40대 자식세대들이 정의로운 정부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 연구소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육신과 영혼을 모두 불태워서라도 말이다.




출처: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출처 : 富 Take(울산지역 재테크 동호회)
글쓴이 : 자유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