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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의 역사

파랑새/송이갑 2008. 2. 15. 15:19

[울산의 랜드마크 태화강]백운산·가지산 정기받은 백리길 太和江
태화강의 역사
[2008.02.13 22:56]

울산의 젖줄 태화강은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에서 발원해 하류로 47.54㎞ 거리를 내달려 동해로 흘러든다. 사진은 백운산 탑골샘.

백운산 탑골샘서 하루 평균 15�� 솟아 흐르는 태화강
신생대 4기 하천-바닷물 조수작용으로 울산만 이룬뒤
해수면 차차 낮아지면서 퇴적층 쌓여 현재 지형 형성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지은 태화사서 지명 유래


◇태화강의 발원지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해발 910��) 기슭 탑골샘에는 하루 평균 15�牡� 수정처럼 맑은 물이 샘솟고 있다. 이곳이 생태도시 울산의 랜드마크 태화강의 최장거리 발원지다.

백운산 탑골계곡 내 옛 절터에서 10�� 아래 바위틈 탑골샘(해발 550��)에서 수정처럼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흘러나온다. 이곳의 지명은 옛날 홍수로 탑이 굴러 내려와 아랫마을을 탑골이라 부르게 된데서 유래된 것이다. 이 물은 미호천과 복안저수지, 대곡천과 대곡댐, 사연댐을 지나 울산시가지를 거쳐 47.54㎞의 거리를 내달려 동해로 합수한다.

탑골샘이 태화강의 최장거리 발원지이라면 종전까지 발원지로 알려져 왔던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쌀바위(해발 1000��)는 상징적인 발원지로 명명됐다. 쌀바위에서도 하루 1.4�牡� 맑은 물을 석남사 계곡으로 흘러내려 태화강 본류와 합류해 울산만까지 45.43㎞의 거리를 내달린다.

탑골샘과 쌀바위에서 발원한 태화강의 본류는 지방1급하천(삼호교~상북 덕현리) 구간과 국가하천(삼호교~명촌교 하류) 구간을 지나면서 102개의 지방2급하천과 지방1급하천(동천)이 합류한다. 태화강의 하천유역의 면적은 652.4 ㎢로 울산 전체 면적(1056.28 ㎢)의 61.8 %를 차지한다.

울산시는 지난해초 '태화강 발원지 찾기' 용역(2006년 7월24일부터 12월31일)을 통해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쌀바위'는 '상징적 발원지'로,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은 '최장거리 발원지'로 확정했다.

용역을 맡은 울산발전연구원이 제시한 "발원지에 대한 고문헌 조사, 실측 등의 방법을 통해 수집한 자료를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측면에서 검토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 탑골샘은 길이는 길었으나 지역적 공감 형성이 미흡했다. 쌀바위는 탑골샘 보다는 길이가 짧지만 지역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두 곳을 발원지로 이원관리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다.

울산시는 태화강의 발원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화강의 실질적인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인 만큼 수질과 주변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보존방안도 함께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가지산 쌀바위는 발원지 표석과 함께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을 자연친화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 백운산 탑골샘도 발원지 표석과 함께 주변 대곡댐, 사연댐,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울산시 태화강관리단 김정규 단장은 "올해 탑골샘에 발원지 표지석과 안내판을 설치하고, 장기적으로, 태화강 하류의 억새밭과 대숲생태공원, 선바위, 반구대 암각화를 잇는 관광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화강의 유래

울산 지질시대 지층은 약 1억8000만년(중생대 백악기) 전부터 7500만년(신생대 4기) 사이에 형성된 경상계 누층의 일부다. 태화강 서쪽에 위치한 현재 남구 전역과 울주군, 동구 방어진 일부는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지층이며, 북구 신명 해안은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됐다.

울산에서 최후에 형성된 곳이 바로 태화강으로, 신생대 제4기(충적층) 지층이다. 오랜 세월동안 하천의 활동에 의해 자갈, 모래, 진흙 따위가 쌓여 이루어진 퇴적층이 태화강의 지층을 만들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6000B.P(Before present)에서 5000B.P경까지 현재 울주군 범서 굴화리 앞 태화강 중류지역 일대는 고울산만 내륙의 고굴화만이었다. 이 보다 상류인 구영리에서 사연리까지도 바닷물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을 미뤄보면 태화강은 신생대 4기 하천과 바닷물의 활동에 의해 자갈, 모래 등의 퇴적층이 형성돼 울산만의 바닷물이 내륙 깊숙히 들어온 만을 이뤘다가, 선사(구석기·신석기)시대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해수면이 계속 낮아졌고, 하류에 퇴적층이 쌓이면서 현재와 같은 지형을 만들었다.

태화강은 반구대 암각화의 자취를 남긴 선사시대를 거쳐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하천의 이름을 얻는다. <울산지명사>(울산문화원)에 기록된 태화강의 유래는 이렇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때 당나라로 유학간 자장율사 일행이 오랜 수행을 마친 뒤 서해를 건너 도착한 곳이 지금의 태화동 일대의 사포항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중국 산동성 태화지변에서 갑자기 나타난 신인(神人)이 바라던 절을 지어 그의 복(福)을 빈 것이 바로 태화사(太和寺)다. 이 태화사에서 유래된 강의 이름이 태화강(太和江)이다. 조선시대 영남 4루의 하나로 불리던 태화루 역시 이 태화라는 지명에서 따왔다.

태화(太和)라는 지명에는 신라가 태화지룡의 복을 빌면서 우선 외적의 위협을 물리치고 장차 이웃나라를 병합해 통일하려는 호국의 뜻이 담겨 있다.

태화강은 신라시대 이후 지역민들에게 호국의 정서를 안겨주는 휴식처이자,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태화강과 태화루의 경관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국왕와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빼어났다.

고려사에는 '고려의 성종 16년(997년) 흥례부(울산)에 행차해 태화루에 나아가 주연을 베풀었고, 강에서 잡아온 큰 생선을 먹고 난 뒤 병환을 얻어 환궁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신 권근(1352~1409)은 '태화루기', 조선시대 서거정(1420~1488)은 '태화루중신기'에서 태화강과 태화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태화루는 임진왜란 때 불타 소실됐으나 태화강은 해방 이후 60~70년대까지 울산 지역민에게 농사와 식수를 제공하는 생명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울산발전연구원 김석택 도시환경실장은 "태화강은 곧 울산의 역사성이자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라면서 "이 같은 자원을 단순한 보존보다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과 휴식을 하고, 문화행사를 접할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유지·관리해 나아가는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창식기자 goodg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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